간절했던 여자계주, 안현수보다 뜨겁게 적셨다
마지막 코너 도는 과정에서 심석희 대역전극
파벌논란-안현수 귀화 파문 등 역경 딛고 첫 금
한국 여자 쇼트트랙이 8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감격을 누렸다.
박승희(22·화성시청)-심석희(17·세화여고)-조해리(28·고양시청)-김아랑(19·전주제일고)으로 구성된 한국 여자 쇼트트랙 계주팀은 18일(한국시각)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이로써 1994 릴레함메르 대회부터 2006 토리노 대회까지 올림픽 4회 연속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한국은 8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아오며 이 부문 세계 최강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여자 대표팀은 지난 2010 밴쿠버 대회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중국에 금메달을 내줬다.
사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중국을 위시한 각국 선수들의 기량이 급성장해 예전처럼 금메달을 장담할 수 없었고,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남자 대표팀은 개인전에서 서로 뒤엉켜 넘어지는가 하면, 계주 준결승에서는 골인 지점을 불과 5바퀴 남겨놓은 상황에서 이호석이 미끄러져 탈락의 고배를 들어야 했다.
여자 대표팀은 더욱 땅을 칠만하다. 500m 결승에 오른 박승희는 레이스 내내 선두를 유지했지만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가 붙잡는 바람에 목전에서 금메달을 놓치고 말았다. 특히 박승희는 다시 달리기 위해 일어섰지만 재차 미끄러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메게 만들었다.
이틀 뒤 열린 1500m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종목 세계랭킹 1위였던 심석희는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 하지만 17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에게 올림픽이란 무게는 너무도 무거웠다. 결국 결승점을 얼마 남기지 않고 중국의 저우양에게 선두 자리를 내줬다.
값진 은메달이었지만 심석희에게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죄송합니다”였다. 그리고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심석희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적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17세 천재소녀의 등장을 반겼을 뿐이다.
악재는 거듭해서 쇼트트랙을 덮쳤다. 특히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러시아명 안현수)가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심석희가 아쉬운 은메달에 그친지 불과 15분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3관왕이었던 안현수는 세계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완벽하면서도 뛰어난 선수였다. 그런 그가 파벌 싸움에 휘말려 갈 곳을 잃었고, 급기야 부상으로 인해 선수상활 유지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러시아를 새로운 조국으로 선택해 보란 듯이 부활했다.
안현수의 감동 스토리는 동계올림픽을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엄연한 러시아인이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고 아쉬움이 컸다. 문제는 이로 인한 후폭풍이다.
성난 여론은 국보급 선수의 귀화를 막지 못한 빙상연맹을 질타했고, 박근혜 대통령 등 정치권이 직접 나서 체육계 비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그야말로 직격탄을 제대로 맞은 빙상연맹은 휘청거리는 상태다.
당연히 소치에 머물고 있는 대표팀에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었다. 경기 전 선수들을 지도하는 최광복 코치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고, 선수들 역시 표정이 밝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자 계주 결승은 분위기를 반전 시킬 아주 좋은 기회였다.
레이스가 시작되자 선수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줄곧 선두를 유지했다. 무엇보다 금메달을 확정짓는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최종 주자로 나선 에이스 심석희는 중국에 밀려 2위로 출발했지만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놓은 시점에서 아웃코스를 공략,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그동안 맘고생이 심했던 선수들과 최광복 코치는 서로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렸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관중들과 안방에서 경기를 지켜본 시청자들도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이 가장 보고 싶었던, 선수들이 하나 된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올림픽의 슬로건처럼 여자 계주팀의 금메달은 뜨겁고 차갑게, 그리고 우리의 것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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