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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순간' 마주한 박대통령, 피하지 말고 맞서라


입력 2014.05.18 13:37 수정 2014.05.18 13:41        이동주 언론인

<칼럼>세월호 참사 의도 없더라도 책임까지 회피할 순 없어

정권 안정을 국가 안위로 치장하지 말아야…해답은 정면돌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인 지난 2월 25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한달. 전 국민에게 불면의 밤을 떠안긴 악몽같은 현실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세월호 참사 가족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가 대(大)개조’를 약속했고 19일 오전 9시 대국민 담화도 발표할 예정이다.

집단 우울증에 빠진 한국사회가 속히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촌각이라도 낭비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철밥통에 덕지덕지 붙은 관료주의 기름때나 초법적 세상에 사는 광기집단의 그악스러움만 봐도 국가개조의 앞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만하다.

이 총체적 혼돈은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까. 한편 막막하지만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고 책임만 떠안겠다는 필사의 각오가 있으면 안될 게 없다.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집무실에 써붙였던 '모든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The buck stops here)는 경구가 충분한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에게 그런 헌신적 애국심이 없을 리 없다. 아마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강할지 모른다. “국민을 어떻게 하면 잘 살게 하느냐는 생각 외에는 다 번뇌”라는 고해나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해보자며 팔 걷어붙인 리더십을 모두 위선으로 볼 이유는 없다.

다만 그 바탕의 진정성까지 그대로 믿어주기엔 말과 행동의 불일치가 너무 컸다는 게 문제다. 수첩공주와 깨알지시로 상징되는 만기친람 행정, 받아쓰기 내각과 심기경호용 참모들로 대표되는 인사난맥상은 대한민국호의 항로를 보여주기보다 선장의 위용을 과시하는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통령 상표만 번쩍이던 현 정부의 포장을 뜯고 보니 내용물이 겨우 이거였냐는 게 세월호 사태를 겪은 국민들의 참담한 절규다.

그러므로 국가개조를 약속한 박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여의도에서 익혔던 정치적 허영심을 내던지는 자세다. 권력자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인양, 정권의 안위를 국가의 안위인양 치장하려는 원초적 욕구를 내던지라는 말이다. 국가가 큰 낭패에 봉착하는 원인이 대개 그런 탐닉에서 비롯됐던 사례는 역사책을 들춰봐도, 혹은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조선 16대왕 인조는 당시 국제질서 변화를 거스르는 외교정책을 펴다 병자호란이라는 국치(國恥)를 자초했다.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수십만 백성을 포로로 끌려가게 만들기까지 인조가 내건 숭명배청(崇明排淸)의 명분은 국가안위였다. 그러나 반정(反正)으로 광해를 몰아낸 인조에게 정작 필요했던 건 정권 안정과 지배계층의 안위였음은 불문가지다.

지금 북한 김정은이 핵개발, 미사일, 무인항공기까지 갖은 도발을 지속하고 일본 아베 정권이 침략적 근성을 수시로 드러내는 상황은 어떤가. 이들의 망동은 과연 국가안위를 위한 것인가, 정권안위를 위한 것인가? 그 대답은 너무나 쉬워서 질문이 어리석어 보일 뿐이다.

박 대통령은 그 쉬운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봐야 한다. 물론 세월호 참사의 경우는 박 대통령의 의도와 무관한 일이고 엄밀히 말해 현 정부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할 사안도 아니다. 하지만 의도가 없었다해서 책임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국가적 재난을 의도적으로 초래하는 지도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특히 국가의 틀을 개조하는 시대적 과제는 박근혜정부가 책임지고 이뤄내야 한다. 세월호 선장에게 씌워질 ‘부작위 살인’ 죄목에서 무능하고 게으른 관료들은 과연 자유로운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국가개조는 허울뿐인 옥상옥 조직 만들고 특별법 한 두 개 통과시킨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런 보고서는 과거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참사를 겪었던 관료들의 책상 서랍 속에 잔뜩 들어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에 서있다. 성난 황소 같은 거대한 부조리와 마주선 상황에서 눈을 부릅뜨고 급소를 찔러가는 작업을 용기있게, 그리고 솜씨있게 해내야 한다. 설령 내가 피투성이가 될망정 너를 꼭 쓰러뜨리고 말겠다는 치열한 의지가 없으면 이 승부는 해보나마나다.

그 험난한 작업을 위해선 그에 적합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내각과 청와대를 채우는 인사개조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름값 높은 고매한 얼굴 대신 각 분야의 실무개혁가들을 데려다 앉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야권에도 인재를 발탁하는 융통성도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권한을 다 나누어주고 “지금부터 당신이 하는 일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오직 국가를 위해 헌신해달라”라고 말해야 한다. ‘국가 대개조’라는 과제는 그런 결기 없이 성공할 수 없다.

글/이동주 언론인·전 매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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