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경제활성화는 소비에서부터②>1990년대 후반과 닮은 꼴?
"26개월 연속흑자, 일반 시민들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
소비 빙하기 시대다. 내수 침체 속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수경기를 끌어내렸다. 세월호 사고로 전 국민이 충격에 휩싸이면서 요식업 등 서민형 자영업자에게 경제적 고통이 집중됐다. 소비심리와 투자심리 악화를 방치할 경우 민간소비와 투자의 동반 침체로 내수경기 둔화가 더욱 심화되는 '내수 디플레이션' 우려도 나온다. 정부도 올해 초 '경제개혁 3개년 계획'에 맞춰 내수 경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며 내수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복안이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이자비용, 주거비, 교육비 등 고정비 성격의 지출부담이 커짐에 따라 가계의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고비용 구조가 문제다. 결국 소비 회복의 키는 가계소득에 있다. 고용시장 회복의 세기에 따라 소득 개선 여부가 영향을 전망이다. 구조적인 소비부진 요인을 개선하지 않는 한 소비 회복세의 전환은 기대하기 어렵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체감경기 밑바닥 왜?…"닫힌 지갑 이유 알고 계시나요"
②불황형 흑자, 돈 풀어도 금고로 간다면 답이 없다
③소비심리 '나비효과' 꽁꽁 언 주식시장이 말하고 있다
④<전문가컬럼>경기진작, 소비활성화는 이렇게
"대기업들에게만 26개월 연속 흑자지, 우리 같은 작은 규모의 사업장이나 중소기업들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대기업도 내수시장에서 원단을 구매하지 않으니 우리에게는 불황이다."(30대 섬유 원단 사업자)
"26개월 연속 흑자라고 떠들어 대는데 정부에서는 월급에서 원천징수해가는 금액 올리지, 밥값도 올라가지, 영화비도 올라가지, 그런데 정작 내 월급은 안 올라간다. 우리나라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는 것 맞나? 그래서 한 달에 1~2번 보던 영화도 줄인다."(30대 직장인)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26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기록하고 있지만 '불황형 흑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상황이다. '원고'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선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내수시장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끼어있다.
국내 내수시장이 활성화 돼 있는지 여부는 경상수지 가운데 상품수지 수입 지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6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현재 경상수지의 상품수지 수입부문 증감률(전년동기대비)은 26개월 동안 월평균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동안 수입이 감소세에 있기 때문에 내수시장이 침체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한국은행에서는 수입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고, 이에 따라 내수 부문도 회복되고 있다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불황형 흑자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불황형 흑자에 대해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줄어들고 있을 때, 흑자를 기록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수출이 좋지 않지만 수입 규모가 크게 줄어들면서 흑자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즉, 수입과 수출이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야 '건전한' 흑자라고 평가할 수 있는 셈이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최근까지 20개월이 넘는 장기간동안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것은 총 네 차례다. 1986년 6월~1989년 7월(38개월), 1997년 11월~1999년 12월(26개월), 2003년 6월~2005년 3월(22개월), 2012년 3월~2014년 4월(26개월) 등이다.
이 가운데 경제적 호황기라고 불릴 정도로 수출과 수입이 균형 잡힌 모습을 보이며 '건전한' 흑자를 기록했던 시기는 1980년대와 2000년대 등 두 차례로 평가 받는다.
역대 최장기간 동안 흑자를 기록했던 1986~1989년에는 수출과 수입이 균형 잡힌 모습을 보였다. 흑자행진을 기록한 38개월 동안 상품수지 부문의 수출 월평균 증감률(전년동기대비)은 34.4%, 수입 월평균 증감률은 26.4%를 기록했다. 38개월 동안 상품 수입 부문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은 –1.1%를 기록한 1987년 1월뿐이었다.
22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던 2003~2005년도 상품수입과 수출이 조화를 이루는 양상을 보였다. 이 기간 동안 상품수지 부문의 수출 월평균 증감률(전년동기대비)은 26.5%, 수입의 월평균 증감률은 20.1%를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상품수지 수입 부문은 단 한 차례도 마이너스를 보이지 않았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1980년대 후반은 한국 경제에 있어서 가장 큰 호황기로 평가받고 있다"면서 "정부의 '3저' 정책아래 환율·물가·유가가 모두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내수와 수출 모두 호황기를 맞이했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은 IMF위기를 극복한 이후 활발한 구조조정 등을 통해 한국 경제의 체질·구조가 개선되면서 경제성장이 탄력을 받던 시기"라면서 "특히 미국의 장기 경제 호황기와 맞물리면서 수출 금액도 늘어나고 내수도 좋았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26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던 1997~1999년은 대표적인 '불황형 흑자'라는 평가를 받는 시기다. 수출도 좋지 않고, 내수침체 등이 수입 감소를 견인하면서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1997년 11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우리나라 상품수지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월평균 –2.7%의 감소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상품수지 수입은 –33.2%를 기록, 침체된 내수시장을 그대로 드러냈다.
26개월의 흑자기간 중 1999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수입과 수출 부문이 점차 살아났지만 이 기간 전체의 상품수지 월평균 수출증가율(전년동기대비)은 1.7%에 그쳤고, 수입은 –5.9%의 감소세를 기록했다.
지난 2012년 3월부터 26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는 최근 경상수지 흑자 행진은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였던 1990년대 후반의 상황과 상품수지 부문 지표상 닮은꼴이다.
먼저 이 기간 동안 상품수지 부문의 수입 월평균 증감률이 마이너스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 3월부터 지난 4월까지 26개월 동안 상품수지 수입 부문의 월평균 증감율(전년동기대비)은 –2.85%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3월 수입 증감율이 각각 6.3%, 1.3%, 3.3%로 불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4월 들어 수입 증감률은 다시 –0.9%의 감소세로 전환됐다. 26개월의 기간 전체로 봤을 때는 여전히 감소추세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원고'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견조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에서는 수출이 견조하게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26개월 간 이어지고 있는 흑자는 '불황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에는 외환위기가 온 이후 1998년도에 흑자가 커지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 당시가 바로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라면서 "당시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수출이 줄어들고 소비 감소에 따라 수입도 대폭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하지만 최근 상황이 불황형 흑자라고 평가하는 것은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면서 "우선 최근 소비재 위주로 수입 증가가 이뤄지고 있으며, 각 기업들의 해외 생산이 늘어나면서 관련 원자재 수입이 생산기지가 있는 국가의 수입으로 잡히는 부분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마트폰·자동차 부문의 원자재 수입이 우리나라 통계로 안 잡히는 경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도 지난 2일 한국은행 주최 '2014년 한은 국제컨퍼런스'에 참석차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수출과 수입의 성장률이 실질 국내총생산 증가율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불황형 흑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 실장은 지난 1일 내놓은 '지속적 경상수지 흑자의 배경과 시사점'이라는 논문을 통해 "경상수지가 내수부진형 흑자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라면서 "가공무역, 재투자수익, 배당금 등 기업의 해외 생산활동과 관련된 항목들이 경상수지 흑자 확대에 주요 요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실장은 "기업이 해외 투자기업으로부터 배당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기업의 해외생산 확대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 증가 요인이 된다"면서 "아울러 국제수지매뉴얼(BPM6)에 따라 국제수지 통계 편제 방식이 바뀌면서 우리 기업 생산의 세계화가 경상수지에 미치는 영향이 확연해졌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내수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업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 기업들의 내수판매실적 기업경기실사지수는 2012년 3월 흑자행진을 시작한 이래 100을 넘긴 적이 없다.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를 상회하면 기업들이 내수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하회하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수판매실적 지수는 2012년 3월 92를 기록한 이후 78까지 하락했다가 최근 91로 다시 회복했다.
제조업체들의 설비투자에 대한 적극성도 미흡한 상황이다. 설비투자실적 지수에 대한 업체들의 응답은 26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100을 넘기지 못했다. 2012년 3월 97을 기록했던 지수는 등락을 거듭하다가 지난 5월에 96을 기록했다.
일반 시민들의 소비심리도 마찬가지다. 26개월 동안 경상수지는 흑자 행진을 기록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소비심리와 괴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들의 외식비·교양·오락·문화생활비 지출전망CSI 지수는 줄곧 100을 하회하고 있다. 지난 5월 외식비 지출CSI는 91, 교양·오락·문화생활비 CSI는 90을 기록했다.
박성욱 실장은 "정부는 과감하고 효율적인 인프라 투자를 통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데 정책의 초점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부분이 불황형 흑자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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