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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버킷 챌린지, 꼬우면 100달러만 내던가


입력 2014.08.31 13:58 수정 2014.09.01 10:49        박영국 기자

얼굴에 금칠해도 선행은 선행…루게릭병 환자 위한 모금·홍보 효과 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2일 오후 국회의원 연찬회가 열린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 앞에서 루게릭병 환자 돕기 캠페인 'ALS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해 스스로 얼음물을 뒤집어 쓰고 있다. 김 대표는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을 아이스버킷 챌린지 캠페인 참여자로 지목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전 세계가 ‘얼음물 뒤집어쓰기로’ 떠들썩하다.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는 물론, 정치인, 사회 저명인사들까지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해 미국루게릭병협회(ALS)가 만들어낸 ‘아이스버킷 챌린지’라는 유쾌한 일탈(?)에 동참하고 있다.

지목당한 사람이 24시간 내에 얼음물 샤워 인증샷을 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기고, 이를 실행하지 않을 경우 100달러를 ALS에 기부한 뒤 다시 3명을 지목하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게 아이스버킷 챌린지의 확산 시스템이다.

그런데 사회 일각에서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감지되고 있다. 챌린지 참여 영상을 SNS에 공유한다는 점을 이용해 자기과시나 홍보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지난 30일 케이블 방송 tvN의 SNL코리아에서는 배우 김민준이 게스트로 등장해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지목당하지 못해 안달 난 연예인의 모습을 연출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홍보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연예인의 심리를 풍자한 것이다.

앞서 국내 한 배우는 자신의 트위터에 “루게릭병에 관해서 알고들 하는 건가? 차가운 얼음물이 닿을 때처럼 근육이 수축되는 고통을 묘사한 건데 다들 너무 재미삼아 즐기는 거 같다. 그럴 거면 하지마”라는 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결국 스스로 얼음물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우려는 아니다. 성 발렌티누스 사제의 순교 의미를 되새기자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과자, 쥬얼리, 명품백 회사의 대목일이 돼 버린 밸런타인데이와 마찬가지로, 아이스버킷 챌린지 역시 언젠가는 기업의 상술이나 개인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의 긍정적인 효과에 태클을 걸 만큼 역효과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 참가자들이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기여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부금을 통해 금전적 도움을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루게릭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일단 금전적인 측면을 보자면,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통해 기존의 모범적이고 점잖은 모금운동을 통해 모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기부금이 모였다. ALS가 밝힌 8월말 현재 아이스버킷 챌린지 모금액은 1억달러(약 1000억원)로, 이 캠페인이 없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 모금액(280만달러)의 36배에 달했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도 한국루게릭병협회 3억원, 승일희망재단 7억원 등 10억원이 모였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등장하기 전에는 루게릭병이 뭔지도 모르거나 관심이 없던 많은 이들이 루게릭병을 적어도 예전보다는 더 잘 알고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아니었다면 무슨 방법으로 이처럼 막대한 기부금과 강력한 홍보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선행으로 인해 스스로 이익을 봤다고 해서 그것이 악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참가자들 중 일부가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행위로 인해 물질적 측면이건, 상징적 측면이건 스스로 이득을 봤거나 혹은 그 이득을 목적으로 캠페인에 동참한다 하더라도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도움이 됐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기업들이 기부금을 내거나 사회공헌 활동을 하면서 과한 홍보로 스스로 얼굴에 금칠을 하더라도 잘했다고 박수를 쳐줘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기부를 할 것이고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그 수혜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루게릭병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되새기며 얼음물을 뒤집어쓴다면 더 좋겠지만, 아이스버킷 참가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해도 비난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어설프게 루게릭병 환자의 고통스런 표정을 흉내내는 게 그들에게는 더 큰 모욕일 수 있다.

어떤 불행에 처한 이도, 어떤 극심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이도 평생을 눈물만 흘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행복한 순간이 있고, 웃음을 찾을 일이 있다.

얼음물을 뒤집어쓰며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SNS에서 보는 게 영 아니꼽다면 ‘사랑의 리퀘스트(이웃돕기를 주제로 한 KBS의 교양 프로그램)’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기부하면 된다. 루게릭병 환자 돕기의 취지는 공감하나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행위가 마음에 안 든다면 기부만 하면 될 일이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의 의미 자체를 깎아내리는 행위는 자칫 ‘지목당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안 해줘 스스로 장벽을 친’ 쪼잔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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