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김시대'를 역사속으로 반드시 보내야하는 이유
민주화와 정치 족적 남겼지만 지역갈등 계파정치 구태도
보스없는 춘추전국시대 새로운 민주주의 리더십 나와야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양김시대'가 역사속으로 저물었다.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공고히 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각각 영호남을 대표했던 YS(김영삼)와 DJ(김대중)는 단순히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을 떠나 민주주의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온 몸을 내던졌던 인물로 대중에게 기억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민주화 운동의 동지이자 영원한 경쟁자로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은 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에서 격돌하며 첫 인연을 맺었다. 이 대결에서는 YS가 승리를 거두며 먼저 웃었지만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DJ에게 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DJ는 3선개헌을 통해 출마한 박정희 후보에 패했고, 이후 YS와 5공 신군부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 6월 항쟁을 이끌며 한 배를 탔다. 그러나 1987년 대선에서 두 사람은 야권후보단일화에 실패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평가를 받았다.
14대 대선을 앞두고 YS는 한국 정치사의 큰 획을 긋는 '3당 합당'을 통해 여당 후보로 나섰고, DJ는 제1야당의 후보로 나서며 다시 대결을 펼쳤다. 이 대결에서는 YS가 승리를 거두며 DJ로 하여금 정계 은퇴를 선언케 했다. 이들의 악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년 뒤 다시 정계에 복귀한 DJ는 국민회의를 창당했고 'IMF 책임론' 등을 앞세워 YS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결국 DJ는 15대 대선에서 승리하며 정권교체에 성공했지만 YS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독재를 한다"며 DJ를 비난했다. 이후에도 이들은 여러 정치 사안마다 대립각을 세우며 최악의 관계로 치달았다.
깊어진 갈등관계는 2009년 YS가 DJ의 서거 일주일 전 병상을 찾으며 해소됐다. 당시 YS는 화해로 해석해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제 그럴 때가 됐지 않았느냐. 그렇게 봐도 좋다"고 긍정했다. DJ가 세상을 떴을 때도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양김시대'가 한국 정치사에 남긴 명과 암
YS가 세상을 떠나며 '양김'은 역사 속으로 저물게 됐지만 '양김'이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이들은 유신 치하에서 서슬 퍼런 권력과 직접 부딪히며 민주화를 외쳤다. YS는 집권 이후 '하나회'라는 군부 잔재를 없앴고 금융비리를 '실명제'로 단칼에 잘랐다. 주변의 눈치를 보는 일 없이 저돌적으로 개혁을 단행하며 독재를 청산했다.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한 DJ 역시 '햇볕정책' 등으로 민주화를 안정화시켰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정당정치의 근간을 세운 점도 '양김'의 큰 공으로 꼽힌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양김'으로부터 시작된 정치인들이 굉장히 많다"며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의 역동적인 정치가 저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 역시 "굉장한 카리스마를 갖고 민주화를 위해 권위주의와 온 몸으로 싸웠던 세력"이라며 "한국 정치의 주요 패러다임을 주도했던 인물"이라고 밝혔다.
문민정부가 탄생하는데 크게 기여한 '양김'이지만 이들의 어두운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YS의 상도동계, DJ의 동교동계로 구분되는 계파정치와 지역정당의 폐단은 민주주의 질적 성숙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이들은 많은 정치신인을 양성하기는 했지만 '보스정치'를 열어 계파갈등을 초래한 인물들로 불리기도 한다.
김 교수는 "보스정치의 계보를 마련한 사람들"이라며 "두 사람의 공백으로 보스가 없는 춘추전국시대가 됐다. 당분간은 패권을 잡기 위한 권력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박상철 경기대 교수도 "'양김시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계파정치가 심화됐다"며 "정당 민주주의는 없어지고 상당 부분 정치가 퇴행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내년 총선이 지나면 계파나 지역주의와는 자유로워 질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라는 화두가 생길 것"이라며 "정치인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변화를 위한 이합집산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김' 없는 한국 정치, 극복해야 할 과제는?
제도적 민주화는 공고해졌지만 아직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 교수는 "지역주의가 예전에 비해 많이 묽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지역주의와 계파 갈등은 존재한다. 보스정치, 지역주의 정치를 청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 역시 "지역주의와 계파정치가 오히려 더 심화됐다"고 했다.
이처럼 한국 정치의 문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YS와 DJ는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민주화를 정착시킨다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움직였지만 현재 정치인들의 경우 개인의 영욕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국민의 평가가 많다.
이 교수는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고 어려움을 겪던 '양김'과 같은 큰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 지금 없다"며 "국민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제 한 개인의 카리스마로 정치를 주도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정당 정치,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 국민들이 원하는 문제 해결능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 교수는 "'양김'의 가장 큰 선물은 현행헌법인데 이제 수명을 다 했다. 변화한 시대에 맞는 헌법으로 바꾸는 것이 앞으로 큰 과제"라며 "지역으로 뭉치는 것이 아니라 각계각층이 자유롭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선진국형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YS는 마지막 메시지로 '통합'과 '화합'의 화두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따. 대립과 분열을 넘어 모두를 모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이제 국민적 통합과 화합이 필요하다"며 "이는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적용된다. 남북 간 활발한 교류로 이어져 통일 한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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