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충성심 유발 용인술'
넘치는 사람보다 부족한 자 발탁하면 충성심 확보
박 대통령 인사 스타일은 충성심 유발하는 용인술
자타공인 적임자 발탁은 인사권자의 존재감 약화시키는 요인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들은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머리가 아프다. 지역구내 기초단체장 공천 문제 때문이다. 요즘 같이 ‘상향식 공천’이 자리잡은 세상에 국회의원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도 2년 전에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조직을 갖고 있다. 대다수 공천 지망자들은 경선에서 그 조직의 도움을 얻으려고 국회의원에게 다각도로 로비를 벌인다. 연신 허리를 굽히는 후보들 앞에서 국회의원은 분명 ‘갑’이다. 하지만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단체장 공천을 무난히 처리하면 2년 뒤 본인 선거에 득이 될 것이다. 반대로 까딱 잘못하면 자신의 재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의원 입장에선 크게 두가지 선택지(選擇肢)가 있다. 여론조사 1등 후보를 밀어줄 것인가, 아니면 1등이 아닌 후보를 밀어줄 것인가? 이미 주민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1등 후보를 밀어주면 경선에서 당선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결과에 대해 의원이 생색낼 여지는 많지 않다. 당선자는 ‘본인이 잘나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굳이 안 도와줘도 이길 수 있었지만,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고 내심 생각할 수도 있다. 운이 나쁘면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잘난’ 단체장은 2년 뒤에 총구를 옆으로 돌려 국회의원 선거전에 뛰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뭔가 부족해서 여론 지지도도 낮고, 당선 가능성도 떨어지는 후보를 밀어 공천장을 안겨주면 돌아오는 것도 많다. 당선자는 일종의 ‘부채의식’을 강하게 가질 것이다. 그것은 의원에 대한 ‘충성심’으로 발전한다. 지역구 행사에서 의원을 만나면 상전으로 깍듯이 모시고, 의원의 의정 활동상 홍보에도 단체장으로서 힘을 보탤 것이다.
공직자 인사도 같은 잣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인사의 일반적 원칙은 적재적소(適材適所) 배치다. 어떤 직책에 가장 적합한 재능(才能)을 가진 자를 임명하는 것이다. 직책을 우선시한 인사방식이다. 그에 따른 인선은 국민들에게 양질의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이 원칙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적임자라고 인정할 만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면 인사권자로선 존재감이 약해지는 단점 때문이다. 본인 실력과 역량 덕분에 얻어진 결실이라는 생각에서 인사권자가 안중에 없을 수도 있다.
뭔가 부족해서 적합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앉히면 반대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발탁된 사람은 인사권자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게 된다. 전에는 없던 존경심과 충성심마저 생기기 마련이다. 신의와 보은을 주요 덕목으로 삼는 우리 문화에서 그 정도는 인지상정이다. 현실적으로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는 인사권자도 많이 있다. 직책과 대민 서비스의 질보다 인사권자 본인의 이익을 앞세운 인사방식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이후 장․차관, 기관단체장을 포함해서 수많은 인사를 해왔다. 대부분 적재적소의 원칙에 입각해 해왔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만 하더라도 스스로 고백했다. 그는 지난 8월9일 당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 연설에서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저를 비웃을 때도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준 박근혜 대통령께 감사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 특유의 겸양이 묻어 있는 발언임을 감안하더라도 박 대통령 특유의 인사 스타일을 감출 수는 없었다. 가히 ‘충성심 유발 용인술’이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이것은 최근에도 발동됐다. 앞서 언급한 당 대표 경선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적용된 흔적이 농후하다. 당시 당내 최대 계파인 친박계는 이 대표와 이주영 의원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결국 이 대표를 밀기로 했다는 게 정가의 정설이다. 레임덕이 예상되는 대통령의 전도를 고려해 ‘충성심’이 기준이 됐다는 후문이다. 사전에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 노림수는 적중했다. 지금 이 대표는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감내하면서도 대표직을 고수,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정권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를 자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충성심은 함구, 묵인, 맹종으로 변질
무릇 공직자의 ‘참된’ 충성심이라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주군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고언(苦言)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고언을 약(藥)으로 받아줄 수 있는 도량의 리더십도 있어야 할 것이다. 중국 당 현종은 침을 튀기면서 황제에게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하는 재상 요숭의 고리타분한 행태를 웃으면서 받아줬다고 한다. 후임 재상 한휴는 현종과 때때로 언성을 높이면서 논쟁을 벌였지만 그가 돌아간 뒤 한휴를 험담하는 다른 신하에게 현종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재상은 있을 필요가 뭐 있나? 재상과 짐이 다툼으로써 나라는 화평해지는 것이야”라며 흐뭇해했다고 전해진다. 중국 역사가들이 현종 치세를 ‘개원의치’로 높이 평가하며 자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비평가들은 박 대통령 주변에 ‘쓴소리’ 하는 참모가 없어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질책을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이 쓴소리는 고사하고 쌍방 통행식 토론조차 꺼리는 성품이어서 참모들도 나름 변명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현 정부에서 공직자의 충성심은 참된 모습으로 발현되지 못했다. 차라리 ‘함구’와 ‘묵인’, 심지어 ‘맹종’으로 변질됐다는 평가가 더 합당할 것이다. 18년간 묵묵히 대통령을 보좌해온 ‘문고리 3인방’의 굳게 다문 입에서부터 대통령 탄핵정국에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무표정에 이르기까지 그런 조직문화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맹종심 유발 용인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직자는 국가이익과 국민행복을 우선시하며 직무에 임해야 한다. 이른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다. 그러나 맹종심을 유발하는 용인술 아래선 국리민복보다 인사권자의 이익을 앞세우는 풍토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지난 달 29~30일 검찰의 청와대 압수수색 시도 때 ‘국가기밀’이란 이유를 대며 조직적으로 방해했던 청와대의 행태도 그 연장선상에서 해석될 수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국민 분노와 허탈감, 국격 추락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실체적 진실을 속히 파헤쳐야한다는 생각을 가졌더라면 청와대는 검찰의 정당한 법 집행을 그런 궤변으로 방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동시에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이 대통령을 형사사건의 피의자로 입건하고 그에 맞서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거부하는 사상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과 사정라인의 정점인 민정수석이 자리를 유지하지가 어려웠을 것이다. 후배 검찰 조직과 인사권자인 대통령 사이에 끼여 마땅히 운신할 공간도 없는 상태에서 무력감과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을 것이다. 특히 최 수석은 임명장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표를 던진 것을 보면, 검찰의 명예와 자존감을 중시하는 정상인이라면 감내하기 힘든 자리임을 읽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사표 수리 여부를 수일째 미루고 있다. 설사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해도 그들이 사의를 거둬들일지도 미지수다. 그런 불확실한 여건이 대통령의 결정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상황이 그렇다면, 차라리 그 자리를 비워놓는 게 정답일 수 있다. 정상적인 공직자라면 감내하기 힘든 직책임에도, 대통령 특유의 용인술을 발동해 자리를 ‘덤핑’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혹여 그런 인사가 강행된다면 또다시 국익과 국민보다는 대통령만 바라보며 국록을 축내는 또 다른 맹종자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은 국민들에게 최순실 사태에 이은 또 하나의 불행요인이 될 것이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