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잔치? 김연아가 낳은 평창올림픽의 희망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출전권이 역대 최다
김연아가 만든 선순환 구조..이제 시작에 불과
한국 피겨 스케이팅이 다음 시즌인 2017-18시즌에는 역대 최다인 총 28명의 남녀 싱글 선수들을 주니어 그랑프리 무대에 세울 수 있게 됐다.
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주니어피겨선수권대회에서 남자 싱글의 차준환(휘문고)과 여자 싱글의 임은수(한강중)가 나란히 '톱5' 진입에 성공한 결과다.
차준환은 지난 16일 대만 타이베이의 타이베이 아레나에서 끝난 피겨 남자 싱글에서 자신의 ISU 공인 최고점인 총점 242.45점으로 5위를 차지, 한국 남자 선수로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5위라는 순위는 물론 아쉬움이 남는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83.48점이라는 자신의 쇼트 프로그램 ‘퍼스널 베스트’ 기록으로 2위에 오르며 역전 우승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가 프리 스케이팅에서 ‘쿼드러플(4히전) 살코’ 점프에서 실수가 나와 순위가 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달권이나 다름 없는 5위에 오르면서 한국 남자 피겨도 여자 피겨에 못지 않은 미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세계 피겨계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자랑할 만하다.
지난 18일 여자 싱글에 나선 임은수도 총점 180.81점을 받아 역시 자신의 ‘퍼스널 베스트’ 점수를 갈아치우며 김연아가 2006년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한국 여자 선수로서는 달성한 가장 높은 4위를 차지했다.
한국 남녀 선수가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동시에 '톱5'를 달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눈부신 성과로 한국 피겨가 다음 시즌 얻게 될 과실은 너무나 달콤하다. 한국 남녀 피겨 대표팀의 2017-2018 시즌 ISU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출전권이 역대 최다 수준으로 늘어났기 때문.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출전권은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국가별 순위로 정해지는데 국가별 순위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 나선 선수들 가운데 가장 높은 성적만을 따져 결정된다.
이번 세계 주니어 대회에서 차준환이 종합 5위를 차지, 한국은 남자싱글에서 국가별 순위 3위를 기록했다. 빈센트 저우의 우승으로 미국이 1위, 러시아 선수들이 2위부터 4위까지를 차지함으로써 러시아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인 2위 드미트리 알리예프의 순위 만을 따져 러시아가 2위, 그리고 차준환의 한국이 그 다음 순위인 5위를 차지함으로써 3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한국 남자 싱글은 다음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 각 대회(총7개 대회)별로 2명씩 총 14명의 선수를 내보내게 됐다.
여자 싱글 역시 러시아의 알리나 자기토바의 우승으로 러시아가 1위, 혼다 마린과 사카모토 가오리가 2~3위를 차지한 일본이 2위, 그리고 임은수가 4위를 차지하면서 한국은 국가별 순위 3위에 랭크됐고, 결과적으로 다음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각 대회별로 2명씩 14명의 선수를 파견할 수 있게 됐다.
김연아의 은퇴가 임박한 시점부터 한국 피겨는 ‘포스트 김연아’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하지만 누구도 김연아의 확실한 후계자로서 김연아가 이룬 업적에 근접한 성적을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결국 한국 피겨는 한동안 암흑기를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러야 하는 한국 피겨계의 입장에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사상 처음으로 안방에서 치르는 동계올림픽이자 언제 다시 돌아올 지 모르는 안방 동계올림픽 무대에서 쇼트트랙이나 스피드 스케이팅 등 다른 빙상 종목과는 달리 피겨 스케이팅은 평창 앞마당을 ‘남의 집 잔치’가 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 삿포로에서 끝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최다빈이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깜짝 금메달을 따내면서 김연아 은퇴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한국 피겨의 존재감과 저력을 대외적으로 드러냈다.
최다빈이 다가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톱10’에 진입에 성공할 경우 한국은 평창동계올림픽에 두 명의 선수가 여자 싱글 부문에 출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파티의 호스트로서 파티의 들러리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 싱글의 차준환과 여자 싱글의 임은수를 비롯해 김예림(도장중), 유영(과천중) 등 유능한 ‘김연아 키즈’ 2세대의 등장은 결국 이번 세계주니어 대회에서 남녀 동반 ‘톱5’ 진입이라는 결실을 이뤄냈고, 다음 시즌 총 28명의 남녀 피겨 유망주들이 세계의 선수들과 기량을 겨룰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이와 같은 성과는 결국 김연아를 롤모델로 피겨 스케이팅에 입문, 김연아를 롤모델로 기량을 연마해 온 어린 선수들의 열정이 빚어낸 성과로서 가히 ‘김연아의 유산’이라 할 만하다.
이제 한국 피겨는 한두 명의 선수에 의존해 명백을 유지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 많은 어린 유망주들이 끊임 없이 국내 대회에서 경쟁하고 국제 대회를 통해 세계의 선수들과 상시적으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구조 속으로 진입하게 됐다.
결국 김연아가 남긴 유산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한국 피겨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더욱 더 고무적인 사실은 김연아의 유산이 만들어낸 한국 피겨의 선순환 구조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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