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농균의 출현' 개물림 사망 사건의 변곡점?
<하재근의 닭치고tv>이쯤에서 최시원 비난 잠시라도 멈추고 따져봐야
사망한 한일관 대표에게 녹농균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인이 불분명해졌다. 그러자 최시원을 향한 비난이 더 강해지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심지어 녹농균 이야기가 최시원과 SM 측의 ‘언플’이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온다.
녹농균이 개의 구강을 통해 감염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6건 정도라고 한다. 이건 0%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병원에서 감염되는 환자의 14%가 녹농균에 감염된다고 한다. 병원 감염의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다.
이것으로 애초의 믿음이 깨졌다. 한일관 대표의 사망이 알려진 후부터 모든 사람들이, 최시원의 개가 물어서 사망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최시원 아버지가 사과문에 병원과실이나 2차 감염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을 두고 맹비난이 쏟아졌다.
녹농균 검출로 이러한 믿음이 깨졌기 때문에, 최시원 개가 사람 죽였다는 판단도 유보적인 쪽으로 바뀌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현실은 비난의 강화다. 종교현상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름하여 ‘무조건 최시원 개 탓이다교’다.
이 사건엔 개에게 원인이 있을 가능성부터 100% 무관할 가능성까지 모두 존재한다. 100% 무관할 가능성이란 다른 경로를 통해 녹농균에 감염됐는데 우연히 시기가 겹쳤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밖에 복합 원인도 가능하다.
일단 병원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을 한 매체에서 제기했다. 처음엔 큰 이상 없었다가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사망에 이른 점이 치료 과정에서의 문제를 의심하게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부터 미심쩍은 대목이었다. 최초에 물렸을 땐 큰일이 아닌 것 같았다. 이럴 때 전문가들의 조언은 아무리 별일 아닌 것 같아도 일단 소독하고 병원에 가라는 것이다. 피해자는 그 조언대로 했다. 그런데 병원에서도 큰일이 아닌 것으로 진단했고, 주사와 연고 등의 처방이 나왔다고 알려졌다.
최시원이 개 생일파티를 열어줬다고 인면수심의 사이코패스 취급을 받는 그때 사실 피해자는 연고 정도 바르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최시원은 본인이 코를 물린 것을 비롯해 많은 지인들이 물렸어도 아무 일 없었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망자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더니 병원에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당연히 병원에서의 과실이나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최시원의 개만을 탓했다. 그리고 녹농균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도 이 같은 여론이 여전하다.
병원 감염 의혹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안 물렸으면 병원 안 갔잖아. 그러니까 최시원 개 탓이야’
이런 논리대로라면 이 세상에 의료사고는 없다. 충치 치료하러 갔다가 병원 과실로 사망해도 애당초 충치가 아니었으면 병원 안 갔을 것 아닌가. 내가 넘어져서 상처 치료하러 갔다가 병원 과실로 사망해도 내가 넘어진 탓이다. 이상한 논리 아닌가? 아니면, 개에게 물린 상처를 통해 녹농균에 감염됐을 거라고 단정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근거가 없다.
최시원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을 자꾸 무는 개를 공동생활공간에서 키운 것 자체가 잘못이다. 병원에 간 원인을 개가 제공한 것도 잘못이다. 그 비판은 당연한데, 그것을 넘어서는 증오가 문제다. 사실관계와 책임의 정도는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사람을 한 대 쳤는데, 맞은 사람이 의료과실로 숨졌다고 해서 한 대 친 사람이 살인죄 처벌을 받는 식이라면 부당하다.
최시원을 욕하고 싶고, 최시원의 개를 욕하고 싶고, 무개념 애견인들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 사실관계를 무시하는 쪽으로 이어진다. ‘개가 죽였고 최시원이 나쁜 놈이다’라고 정리하면 속 편하고 욕할 사람도 분명한데, ‘뭐가 뭔지 아직 모르겠다’라고 하면 답답하고 모호하기 때문에 대중이 속 편한 쪽을 선택한다. 우리 인터넷 문화의 고질병이다.
이 사건은 처음에 무분별한 애견문화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있었는데, 사태가 진행되면서 우리 인터넷 문화의 고질병을 드러내는 또다른 의미가 나타나고 있다. 사람을 무는 개도 문제지만, 툭하면 사이버 인민재판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도 문제다. 개보다 사람이 사람에게 더 큰 해를 끼치는 법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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