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이냐, 적자생존이냐…'멀티숍 시대' 기로 선 화장품 원브랜드숍
실적악화·법정관리에 우울한 원브랜드숍…'성장의 한계' 위기감 고조
유통 효율화 및 비용감축 잇따라…생존 위한 수단 총 동원
2010년 전후 로드숍 전성시대를 풍미했던 중저가 화장품들이 줄줄이 실적악화를 겪고 있다. 이 중 스킨푸드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원브랜드숍의 위기감이 더욱 고조됐다.
18일 화장품업계에 따르면 스킨푸드는 협력업체에 납품대금 20억원을 지급하지 못해 공장 부지 등을 가압류 당했고, 직영점에서 일하는 직원 180여 명을 권고사직했다.
감사보고서를 보면 스킨푸드는 작년 부채 총계만 434억원에 달했고, 총자본 55억5770만원에 대비한 부채비율은 781%에 이른다.
스킨푸드의 경영난 배경으로는 할인 행사를 열지 않는 '노 세일(No sale)' 정책을 고수했다는 것과 부진했던 해외 사업 등이 꼽힌다. 그러나 근본적인 배경은 한때 원브랜드숍 매장이 상권을 가리지 않고 우후죽순 생기면서 '한 집 건너 한 집이 화장품 가게'라고 할 정도로 심각한 포화상태를 겪으면서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H&B(헬스엔뷰티) 스토어의 성장과 중국의 사드보복이 겹치면서 원브랜드숍의 몰락을 부추겼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임대료가 비싼 주요 상권일수록 더 많은 화장품 매장이 들어섰던 게 사실"이라며 "예전에는 관광객을 겨냥해 중국인 아르바이트생도 서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요즘에는 중국 유학생들이 일할 곳을 찾기도 어렵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스킨푸드 외에도 1세대 로드숍들은 전반적으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2016년 적자 전환한 네이처리퍼블릭은 그동안 비효율 매장을 정리하고 비용을 줄여 올해 상반기 겨우 흑자를 달성했다. 미샤·어퓨를 보유한 에이블씨엔씨와 토니모리, 에뛰드하우스는 올해 상반기 나란히 적자 전환했다.
이와 달리 국내 1위 H&B숍인 올리브영 매출은 2015년 7603억원에서 지난해 1조4360억원으로, 영업이익은 381억원에서 688억원으로 약 2배 증가했다.
GS리테일과 롯데, 신세계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H&B 사업에 뛰어들면서 화장품 편집숍 시장에서도 유통 공룡들이 맞붙는 각축전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국내 H&B 시장 규모는 작년 기준 1조7000억원으로 2000억원에 불과했던 2010년에 비해 8.5배 성장했다.
원브랜드숍들은 활로를 찾기 위해 수 년 전부터 해외 시장에 투자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오히려 경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 스킨푸드도 2012년경 미국과 중국, 일본 등 해외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것이 경영 위기의 시초가 됐다.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은 130여개에 이르는 중국 내 매장을 점차 줄이다가 올해 5월경에는 모두 문을 닫았다. 유통채널 효율화를 위해 운영비가 많이 드는 오프라인 매장을 접고, 현지 인기 H&B스토어인 '왓슨스'와 온라인 채널에만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에이블씨엔씨도 지난해 일본 내 미샤 직영매장을 열기보다 현지 드럭스토어에 제품을 납품하는 방향으로 유통방식을 바꿨다. 국내에서는 기존 가맹점들의 수익을 잠식할 수 있는 탓에 H&B숍이나 드럭스토어 입점에 나서기는 사실상 어렵다.
앞서 원브랜드숍이 번성하면서 소망화장품(현 코스모코스)·한국화장품·코리아나화장품 등 K뷰티 1세대 기업들이 일제히 위기를 겪었던 상황이 되풀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감지된다. 이들 기업은 원브랜드숍이 이끈 시장 지형 변화에 재빨리 대응하지 못하면서 실적 부진의 늪에 빠졌다.
이를 선례로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자사 편집숍을 활용해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아모레의 '아리따움'과 LG생건의 '네이처컬렉션'은 최근 자사 브랜드만 입점하던 기존 방침을 깨고 타 기업 제품까지 선보이기 시작했다.
한 원브랜드숍 관계자는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시장 변화에 잘 대처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 의식이 업계 전반에 깔려 있다는 것"이라며 "편집숍이 대세로 떠오르는 가운데 화장품 기업들은 위기를 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전략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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