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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금융사, 주 52시간 규제 완화 놓고 셈법 분주


입력 2020.02.19 06:00 수정 2020.02.18 21:43        박유진 기자 (rorisang@dailian.co.kr)

외국계 은행들 "주 52시간 규제에 생산성 저하 우려"

홍콩·일본·미국선 예외 적용…한국만 주 52시간 강조

국내 진출 외국계 주요 금융사 직원 1인당 생산성 현황ⓒ데일리안

금융당국이 외국계 금융사들의 주 52시간 규제 완화 예외 목소리를 들어주고자 각 국가별 근로 실태 파악에 나섰다. 고용노동부에 관련 규제 예외 적용을 요청하고자 준비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현재까지 외국계 금융사들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높은 생산성을 내야 하는 영업 환경상 직원 1인당 법정 최고 근로시간 52시간 준수는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사(은행·증권·자산운용사)에 본점과 국내 근무 여건이 담긴 근로 현황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지난 10일 열린 '외국계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오찬 간담회' 자리서 일부 CEO들이 은성수 금융위원장에게 법정 최고 근로시간인 주 52시간 규제 예외 목소리를 전달하면서다.


이날 참석자들은 일부 전문 직군 등에 한해선 주 52시간 업무 정착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전 새계 금융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시시각각 거래하는 외환 딜러, 투자 전략을 세우는 증권 중개인 등은 업무량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한 참석자는 "주 52시간제로 굳이 서울에 지점을 둘 필요 없이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일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우려를 토로한 상황이다.


현장에서 은 위원장은 "예외조항이 많은 경우 법적 안정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어 신중 검토가 필요하다"며 "제도 정착 상황 등을 보아가며 고용부에 의견을 전달하겠다"며 사실상 유보적 입장을 보였지만, 금융사의 고충을 일부분 이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홍콩 등에서 일하는 글로벌 트레이더들의 경우 국내와 같은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받지 않아 외국계 금융사 입장에선 자칫 업무 생산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은 상태"라며 "일부 국가의 경우 법정 최고 근로시간이 정해져 있어도, 애널리스트나 펀드 상품 개발자 등 특별 직군에 대해서는 특례법을 적용하고 있어 국내도 이러한 사항이 적용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소관부처인 고용부를 어떻게 설득시키냐다. 고용부 또한 지난해까지 외국계 투자은행(IB)과 접촉해 이 같은 애로사항을 전달받은 바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예외 규정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IB 업계의 경우 전문성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딱 잘라 특정 직군만 예외를 적용하기가 모호하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예외 조치가 아예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부는 지난해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에 한해 재량간주시간근로제를 인정했다. 재량간근로제는 근로자가 스스로 업무 시간을 정할 수 있어 주 54시간을 사실상 초과 근무할 수 있게 길을 터줬다.


이는 일본을 벤치마킹한 제도다. 일본의 경우 재량근로제와 함께 고도프로페셔녈제도라는 운영 중인데 국내 또한 도입 가능성이 나온다. 이 제도는 고소득 전문직에 한해 노동시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골자다. 근무시간에 따라 급여를 받아 가는 근로자가 아닌, 성과에 맞춰 임금을 지불받는 전문 직군에 한해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는 애널리스트와 금융 컨설턴트, 파생상품 개발자, 연구개발직 등의 직종이 포함된다. 연 1705만엔(한화 약 1억 8500만원)을 받는 고소득자만 특례법을 적용받는다.


다만 일본의 경우 지난해 4월부터 이를 실행하고 있는데 부작용 우려도 제기된다. 특례법 적용 시 일반적인 의미의 잔업수당, 휴일근로수당, 심야근로수당 등 각종 초과근무수당은 받을 수 없다. 때문에 초과근무수당의 지급없이 과로를 강요할 우려도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를 적용받고 있는 근로자는 극히 적어 큰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나온다. 일본 후생노동성 고시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서 이 법을 적용받고 있는 근로자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413명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IB 업계를 중심으로 관련 애로사항이 꾸준히 제기된 사항"이라며 "일부 업종에 국한되는 사례에다 규제 자체가 불확실해지는 리스크가 있을 수 있지만, 검토를 이어가는 중이다"고 말했다.


외국계 금융사들이 이처럼 규제 완화를 호소한 데에는 본점과 국내의 근무 환경에 괴리가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사의 대부분은 일본과 미국, 홍콩 등 금융 선진국에 위치해 있다.


이들 국가는 국내처럼 근로시간 규제가 엄격하지 않은 상황이다. 홍콩의 경우 금융허브 국가라 금융 업무 노동 강도가 국내에 비해 높은 수준이며, 미국의 경우 화이트칼라 직군에 대해선 유연하게 근로 시간을 운영 중이다.


국내에 지점을 두고 있는 외국계 금융사의 경우 최소한의 인원으로 높은 생산성을 내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국내에 지점을 두고 있는 36개 외국계 금융사 중 26곳은 총 직원이 100명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직원 1인당의 생산성을 따져 보면 수십 억원에 달하는 곳이 있다. 직원 수가 11명에 그치는 멜라트은행의 경우 그해 당기순이익은 113억6600만원을 거둔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환 딜러만 해도 한국과 런던, 미국 등 시시각각 열리는 각국의 장 상황에 맞춰 변동성 있게 업무를 보고 있다"며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에 52시간에 막혀 업무를 보지 못하게 될 경우 생산성 저하가 우려되고 이들 대부분은 고액 연봉자라 인력을 추가 확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유진 기자 (rorisang@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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