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에 부동산 규제 풍선효과 겹쳐지며 수요 확대 지속
코로나19 속 여신 위험 커지는데…리스크 관리 부담 증폭
국내 5대 은행에서 가계가 빌려간 전세자금대출이 최근 한 달 새 또 다시 1조4000억원 넘게 급증하면서 9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세대출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한 대형 시중은행이 관련 대출 취급을 잠정 중단하려 하는 등 불안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형국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여파로 서민 경제가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와중에도 멈출 줄 모르고 불어나는 전세자금이 은행의 새로운 부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달 말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들이 보유한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총 90조9999억원으로 1개월 전(89조5724억원)보다 1.6%(1조4275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은행들의 전세대출이 지난 1~4월 넉 달 간 81조3058억원에서 87조원으로 7.0%(5조6942억원)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흐름이다.
은행별로 봐도 모든 곳들의 전세대출이 일제히 증가 곡선을 그렸다. 우선 신한은행의 전세대출이 22조543억원에서 22조4137억원으로 1.6%(3594억원) 증가하며 최대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 역시 18조2602억원에서 18조5831억원으로, 농협은행은 18조1460억원에서 18조4250억원으로 각각 1.8%(3229억원)와 1.5%(2790억원)씩 전세대출이 늘었다. 하나은행의 전세대출도 15조9916억원에서 16조3670억원으로, 우리은행은 15조1203억원에서 15조2111억원으로 각각 2.3%(3754억원)와 0.6%(908억원)씩 전세대출이 늘었다.
이처럼 빠르게 몸집을 불리는 전세대출의 배경에는 낮아진 금리가 자리하고 있다. 장기화하고 있는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준금리가 빠르게 내리기 시작하면서, 전세대출 이자율도 상당히 저렴해졌다.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을 담보로 실행된 5대 은행들의 전세자금대출 가중평균금리는 올해 초만 해도 3% 안팎 수준이었지만, 지난 달에는 최대 2%대 초반까지 내려간 상황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준금리가 유래 없는 0%대까지 추락하면서다. 한국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자 지난 3월 기준금리를 기존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했다. 우리 금융 시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제로금리 시대다. 그럼에도 경기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한은은 두 달 만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0.25%포인트 내린 0.50%로 결정했다.
아울러 부동상 시장의 여건도 은행 전세대출 수요를 떠받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말에 나온 12.16 대책에 따른 부동산 규제와 올해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주택 매수 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대신 전세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어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번 달 첫째 주 서울 전셋값은 0.04% 상승해 48주 연속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전세대출이 지나치게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리스크에 대한 염려도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대출이 가장 많은 신한은행이 일부 전세대출을 차단하려 했던 시도는 비록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런 걱정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신한은행은 최근 전세대출이 이례적으로 폭증하자 지난 달 중순 다세대 빌라와 단독다가구, 오피스텔 등에 대한 보증부 신규 전세자금 대출을 중단한다는 공문을 일선 지점에 내려 보냈다. 하지만 서민 주거용 자금까지 막는 것은 지나친 대응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자 이를 전면 취소했다.
가뜩이나 은행들은 기업대출에 대한 부실 위험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은행 대출 창구로 몰려들고 있어서다. 더욱이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의 빚 상환 여력이 더 악화될 것으로 점쳐지는 현실은 은행들의 고민을 더 키우는 지점이다. 실제로 국내 은행들의 기업대출은 지난 4월에만 27조9000억원 증가했다. 이 같은 은행 기업대출 증가폭은 한은이 2009년 6월부터 관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월간 기준 최대 규모였다.
이런 여러 정황 상 은행들은 전세대출에도 속도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앞선 신한은행의 사례처럼 전세대출이 서민 생계와 밀접한 영역이다 보니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하기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이에 당분간 전세대출 리스크 관리를 둘러싼 은행들의 주름살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세자금 대출이 통상 비교적 위험이 적은 여신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이 역시 안정성을 확신할 수만은 없다"며 "다만, 다른 대출들에 비해 여신 심사를 강화하는데 어려운 측면이 있어 확실한 리스크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