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이어져 온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는 대중음악 오프라인 콘서트 시장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가요계에서는 사라진 오프라인 공연의 대안으로 온라인 공연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대형 기획사들 중심으로 플랫폼을 확보하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자체 플랫폼을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자본금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가요계 관계자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플랫폼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은 수억에 달한다. 어떠한 형태와 규모로 만드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 인터넷 사이트 개발, 어플 개발 등에만 최소 3억가량이 투자되어야 하고, 이후 이 플랫폼을 활용하기 위한 홍보비와 운영비 등이 매달 천만원가량이 발생한다. 클릭수, 방문자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운영비도 늘어난다.
대형 기획사처럼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중소 기획사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온택트 공연을 위해 기존의 플랫폼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당장 공연 제작비를 기획사가 충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연 송출,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결제 등의 과정에 플랫폼에 물어야 하는 수수료로 인해 공연을 하면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유료 공연을 구매할 팬덤이 두텁지 않고, 퍼포먼스보다는 사운드 위주인 인디 뮤지션들에게는 온라인 공연 수익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다.
때문에 온택트 공연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양극화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만드는 기획사, 기존 플랫폼에 비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기획사, 그리고 온라인 공연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기획사 등 온라인 콘서트는 대중음악 시장에 웃지 못할 새로운 지형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 “내 온라인 공연은 내가 만든다”
국내 상위 1% 기획사로 꼽히는 대형 기획사는 자본력은 물론, 국내외로 탄탄한 팬덤을 가지고 있어 자체 플랫폼을 만들면서 코로나19 시대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내세우고 있다. SM과 JYP, 빅히트가 대표적이다.
케이팝을 대표하는 두 대형 기획사 SM과 JYP는 세계 최초 온라인 전용 콘서트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를 위한 전문 회사 ‘비욘드 라이브 코퍼레이션’(Beyond LIVE Corporation, 이하 BLC)을 설립했다. 기존 SM이 네이버와 손잡고 진행한 ‘비욘드 라이브’에 JYP까지 합세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이에 두 기획사의 소속 가수(그룹)들은 이 채널을 통해 온라인 콘서트를 선보이고 있다. 앞서 슈퍼주니어, 슈퍼엠, NCT 127, NCT 드림, 동방신기, 웨이브이 등이 ‘비욘드 라이브’로 온라인 공연을 했고, 두 기획사가 힙을 합친 후 JYP 소속 그룹으로는 트와이스가 첫 발을 내딛었다. 이들은 대부분 50만명 안팎의 관객들을 끌어 모으면서 실제 수익적으로도 성과를 거뒀다. 첫 주자였던 슈퍼엠이 1회 공연으로 벌어들인 매출액만 해도 약 25억원 가량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욘드 라이브 코퍼레이션’은 단순히 두 기획사의 가수들뿐만 아니라 세계적 온라인 콘서트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실제로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 가수가 ‘비욘드 라이브’에 출연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김현용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기업분석 보고서에서 JYP의 비욘드 라이브 코퍼레이션 출자와 관련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는 케이팝 콘텐츠 주도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소속된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역시 자체 플랫폼 ‘위버스’를 구축하고 지난 6월 방탄소년단의 온라인 공연 ‘방방콘 더 라이브’를 진행했다. 이 온라인 콘서트는 세계 107개 지역에서 동시 접속자 75만6000여명을 기록해 ‘최다 시청자가 본 라이브 스트리밍 음악 콘서트’로 기네스에 오르기도 했다. 방탄소년단 외에도 한 소속사 식구인 세븐틴도 위버스를 통해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다.
윤석준 글로벌 CEO는 “티켓 구매 부스, 상품 판매 부스, 공연장과 관람석 등을 오프라인 대형 스타디움에서 플랫폼 위버스로 그대로 옮겨왔다”며 “‘방방콘 더 라이브’는 공연 관람, 티켓과 공식 상품 구매, 응원봉 연동까지 모두 위버스에서 진행했다. 이는 빅히트 생태계 안에서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 티켓 판매 걱정 NO, 팬덤 있으면 OK
온라인 유료 공연이 활성화하면서 플랫폼과의 협업도 화두로 떠올랐다. 자체 플랫폼을 만들 자본력은 약하지만, 콘텐츠와 팬덤을 보유한 기획사들은 라이브 스트리밍 기술력을 지닌 IT 기업들과 잇따라 손을 잡고 온라인 콘서트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큐브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여자)아이들은 온라인 콘서트 ‘아이-랜드 : 후 엠 아이’(I-LAND : WHO AM I)를 개최했다. IHQ 산하 큐브TV 플랫폼을 활용하는데, 큐브TV는 키스위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어 멀티뷰 기술이 적용됐다. 아스트로도 ‘2020 아스트로 라이브 온 WWW.'(2020 ASTRO Live on WWW) 온라인 콘서트에 키스위 기술을 활용했다. 키스위는 빅히트와도 파트너십을 맺었다.
또 네이버 브이라이브(V LIVE)는 현재 케이팝 그룹들이 팬 미팅과 라이브 방송 창구로 가장 활발히 이용하는 플랫폼 중 하나다. 고화질·고음질 영상을 끊김 없이 전달하는 것은 온라인 공연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에 앞으로 플랫폼 기반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다만 플랫폼 운영비, 홍보 비용 등 송출을 위한 수수료가 많게는 55%까지 나오다 보니 이를 충당할 수 있는 팬덤을 보유한 몇몇 아이돌 그룹들만 흑자를 낼 수 있는 구조다.
◆ 현실적으로 ‘수익화’ 불가능…온라인 공연, 오히려 적자
자본력과 국내외로 탄탄한 팬덤이 구축되지 못한 중소기획사 가수(그룹)들은 오히려 온라인 콘서트를 열었다가 빚만 떠안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 아이돌 소속 기획사 대표는 “대형 기획사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 기획사들은 아무리 온택트 콘서트를 진행한다고 해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티켓 판매도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티켓이 판매된다고 해도 운영비를 충당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라고 밝혔다.
정부에서는 온택트 공연을 코로나19 시대에 오프라인 콘서트 부재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는 상위 몇 프로의 대형 기획사에게만 적용되는 셈이다. 더구나 코로나19로 당장 수익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에서 성공에 대한 확신 없이 온라인 콘서트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특히 자금력이 약한 인디 레이블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부분의 수익이 콘서트와 음악 페스티벌 등을 통해 발생하는데, 코로나19로 올해 모든 페스티벌이 취소되고 크고 작은 콘서트도 대부분 취소되면서 이로 인한 막대한 손해까지 떠안은 상태에서 온라인 콘서트는 현실적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
사운드리퍼블리카 노건식 대표는 “온라인 공연은 자체 송출망 수수료, 시스템 개발 등에 필요한 인건비, 오프라인보다 크게 지출되는 온라인 홍보비 등으로 기존 오프라인 공연에 비해 예산이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온라인 공연은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출현일 뿐, 오프라인 공연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