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금감원 접수 분쟁조정만 2만6천건 상회
규제강화로 부담가중…당국과 갈등확대 우려
국내 손해보험사를 상대로 고객들이 금융당국에 분쟁조정을 신청한 건수가 지난해 다시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손해보험 상품의 특성 상 갈등의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다,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보장을 꼼꼼히 따지는 똑똑한 소비자들이 늘고 있어서다.
특히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시행으로 분쟁이 더 빈번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로 인해 보험업계에서는 금융당국과 마찰이 한층 잦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4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재보험 등 특수 보험사를 제외한 17개 손보사들을 상대로 금감원에 접수된 분쟁조정 건수는 지난해 총 2만6864건으로, 기존 최다 기록이었던 전년(2만5307건)보다 6.2%(1557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분쟁조정은 소비자가 금융사에 제기하는 불만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중재에 나서 합의를 유도하는 절차다.
손보사별로 보면 삼성화재를 둘러싼 분쟁조정이 5958건으로 제일 많았다. 그 다음 현대해상과 DB손해보험에 대한 분쟁조정이 각각 4609건과 3656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KB손해보험(3181건)·메리츠화재(2927건)·한화손해보험(1640건)·흥국화재(1616건)·롯데손해보험(878건)·MG손해보험(618건)·악사손해보험(563건) 등이 분쟁조정 건수 상위 10개 손보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손보사와 소비자 사이의 갈등이 확대되고 있는 주요인으로는 과거에 비해 훨씬 높아진 고객들의 보험 이해도가 꼽힌다. 손보업계 분쟁조정의 상당수는 자동차보험과 관련돼 있는데, 이제 온라인을 통해 누구나 직접 교통사고 과실비율을 따져볼 수 있게 되면서 보험사가 정한 보험금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블랙박스 설치 차량이 늘면서 이를 근거로 분쟁조정을 신청해보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상품 구조 상 손보업계는 다수의 분쟁조정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생명보험은 주로 고객 본인 혹은 가족이 보험금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비교적 문제 제기가 적은 반면, 손해보험 상품은 자동차보험과 같이 가입자와 보험금을 받는 사람이 달라 갈등의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생보사에 대한 분쟁조정은 8588건으로 손보업계 대비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쟁조정의 과도한 확산은 보험사들에게 분명 달갑지 않은 현실이다. 특히 25일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금소법이 가동되면 이런 염려는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보험업계에서는 금소법이 실시되면 지금보다 분쟁조쟁이 급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소법에 따라 신설되는 조정이탈 금지 제도로 인해 2000만원 이하 소액 분쟁은 분쟁조정 전 소송 제기가 원천적으로 차단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걱정되는 대목은 금융당국과의 불협화음이다. 자살보험금이나 즉시연금 등 최근 몇 년 간 업계를 휩쓸었던 이슈들은 대부분 분쟁조정이 단초가 됐다. 불어나는 분쟁조정이 금융당국과의 갈등 확대로 이어질까 보험사들이 노심초사하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분쟁 사건의 대부분이 2000만원 이하인 현실을 감안하면 금소법 이후 분쟁조정은 지금보다 증가할 공산이 크다"며 "분쟁조정을 계기로 금감원과 대립각을 세워야 했던 경험이 많은 보험사들로서는 정무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