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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명대사②] 마틸다의 질문…레옹,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입력 2021.03.05 01:00 수정 2021.03.04 20:45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레옹'의 주인공 마틸다 ⓒ㈜제인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이 어떤 질문을 한다. 답하는 이는 또 다른 주인공일 수도 있고 조연일 수도 있는데, 그 답에 의해 질문의 의미가 깊어지고 인상적 질문이 되는 순간을 우리는 종종 발견한다.


영화 ‘레옹’(감독 뤽 베송, 1994)의 주인공 열두 살 소녀 마틸다(나탈리 포트만 분)가 계단에 앉아 코피를 닦고 있을 때, 또 다른 주인공 레옹(장 르노 분)이 손수건을 내민다. 마틸다의 얼굴엔 가정폭력의 흔적들이 보인다. 손수건을 받아든 마틸다가 묻고, 레옹이 답한다.


마틸다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레옹 ⓒ㈜제인앤씨미디어그룹 제공

마틸다: 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그저 어릴 때만 그런가요?

레옹: 항상 그렇단다. 그 손수건, 너 가져라.


맞다. 인생은 쉬운 적이 없다. 곧이어 마틸다에겐 더욱 힘겨운 일이 인생에 들이닥친다. 마틸다는 재혼한 아버지, 새엄마와 새언니, 그리고 어린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마약 거래 일을 하는 아버지가 마약 일부를 잃어버리고, 부패한 마약단속국 형사 스탠스 필드(게리 올드만 분)는 내일 정오까지 찾아내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다음날 마틸다가 심부름을 가면서, 레옹에게 “큰 우유 팩 2개 맞죠?” 자청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레옹. 마틸다가 장 보러 간 사이 스탠스 필드는 예고대로 온 가족을 몰살해 버린다.


집에 돌아온 마틸다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자신의 집을 지나쳐 옆집 레옹의 문을 두드린다. 살려달라는 절규,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어디도 갈 데 없는 소녀의 구조요청. 레옹은 갈등한다. 사람을 죽이는 킬러, 죄의식을 씻듯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아이처럼 흰 우유를 마시며 사는 남자, 초록 식물을 좋아해 애지중지 키우긴 하나 인생 부초처럼 떠돌이로 살다 보니 안정된 마당이 아니라 화분에 둘 수밖에 없는 자신이 과연 누군가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일 수 있을지 두렵다. 그대로 두었다간 필드 일행에게 죽임을 당할 상황, ‘오늘 하루만 맡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안에 들이는 레옹.


마틸다에게 글을 배우는 레옹 ⓒ㈜제인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인생이 어디 예정한 대로 흘러가던가. 인생의 고됨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데다 귀여운 동생의 복수를 꿈꾸는 소녀는 킬러에게 총 쏘는 법을 배우고 대신 문맹인 레옹에게 글을 가르치며, 서로의 선생이 되어 함께 살아간다.


마틸다: 난 다 컸어요, 나이만 먹으면 돼요.

레옹: 나랑은 반대로구나. 난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어, 문제는 아직 어려서 그렇지.


레옹이 청부 일하러 간 사이, 마틸다는 남동생을 죽인 게 스탠스 필드 형사임을 알게 된다. 집에서 가져온, 바닥 아래 숨겨 있던 돈을 레옹에게 주며 살인을 청부하는 마틸다. 레옹은 마틸다의 사랑 고백에도 그랬듯 머뭇거리고, 마틸다는 스탠스 필드가 있는 경찰서로 돌격한다. 체포되는 마틸다. 레옹은 마틸다를 구출하고 치명상을 입는다. 혼자 갈 수 없다는 마틸다에게 레옹이 하는 말.


영원히 기억될 캐릭터, 레옹과 마틸다 ⓒ㈜제인앤씨미디어그룹 제공

“난 죽지 않아. 넌 내게 진정한 삶을 주었어. 나는 행복해질 거야. 침대에서 잠을 자고, 뿌리도 내릴 거야. 다시는 네가 혼자가 되도록 하지 않을 거야, 우린 할 수 있어.”


꿈은 언제나 이루어지진 않는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었고, 뿌리는 레옹 대신 화분 속의 식물이 일상으로 돌아간 마틸다의 학교 마당에 내리게 된다. 하지만 마틸다가 다시 혼자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숨겨둔 돈과 잃어버린 마약을 찾아 마틸다를 쫓을 스탠스 필드를 향한 레옹의 희생으로 마틸다는 보통 아이처럼 학교에 다니게 됐다. 사회 관계망 안에서 친구도 사귀고 현실 가능한 새로운 사랑도 하게 될 것이다. 레옹처럼 자신의 뱃속 덩어리를 따뜻하게 녹여 줄 누군가도 만나고, 누군가의 응어리진 뱃속을 풀어줄 어른이 될 것이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주인공 샬롯과 밥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때로 전혀 다른 영화를 보다가 먼저 본 영화에서 본 질문의 답을 발견하기도 한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물었는데, 그 답을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감독 소피아 코폴라, 2003)의 밥 해리스(빌 머레이 분)가 해 주는 느낌을 받은 때가 있다. 레옹의 답이 좋았듯, 밥의 얘기도 좋다.


마틸다: 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그저 어릴 때만 그런가요?

밥: 나이가 든다고 사는 게 좀 더 편해지진 않아. 다만 주변 상황에 좀 덜 흔들리게 되지.


실제론 나이 들면 사는 게 좀 더 편해지는지 묻는 샬롯(스칼렛 요한슨 분)에게 밥이 건넨 답이다. ‘레옹’과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 공통점들이 있다. 그 가운덴 나이 차가 큰 남녀가 주인공이고, 나이를 뛰어넘어 순수한 사랑을 서로에게 느끼고, 아끼기에 어른인 쪽에서 선을 지키려 한다. 또 여자 쪽은 어리지만, 남자들은 여리다. 두 커플이 나누는 대화가 무수하고 명대사도 많지만, 먼저 살기 시작한 사람에게 인생을 묻고 삶의 본질을 담은 답이 되돌아온다.


열세 살, 데뷔작으로 명배우 ⓒ㈜제인앤씨미디어그룹 제공

그리고! 나탈리 포트만, 장 르노, 빌 머레이,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명배우들이 나온다. 원래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지만, 다른 작품에서와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공통된 매력이다. 이번 주말, 두 편을 연달아 보는 건 어떨까.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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