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가치 외교' 하에서 대화 제의할 듯
北, '적대시 정책'이라며 반발할 가능성
말레이 통해 美 인도된 '北 사업가' 파장 촉각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를 진행 중인 가운데 북한과 미국이 저마다의 '원칙론'을 내세워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질서 및 규범'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뿐만 아니라 미얀마·이란·중국 등 전 세계 각국의 '잘못된 행동'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강대강 선대선(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는 가치 중심적 외교정책에 입각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화 제의를, 북한이 적대시 정책 일환으로 간주해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대북제재 위반 혐의 등으로 미국이 말레이시아로부터 인도받은 북한 국적 사업가에 대한 신병처리 문제가 양국관계 악화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다.
21일(현지시각)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말레이시아로부터 인도받은 북한 국적의 문철명(56)씨를 전날 구금했다고 밝혔다.
문씨는 유엔 대북제재를 위반해 유령회사를 동원, 돈세탁을 벌인 혐의 등을 받고 있다. 통신은 문씨가 "미국에서 재판을 받게 될 최초의 북한 사람"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최근 한국과의 고위급 접촉에서 '완벽한 대북제재 이행'을 강조한 바 있어 이번 사건을 '시범 케이스' 삼아 법대로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 오는 23일에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처리가 예정돼 열악한 북한 인권 문제도 다시금 주목받을 전망이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유엔 인권이사회 복귀를 선언하며 북한인권결의안 지지를 촉구한 바 있다.
이렇듯 바이든 행정부는 정책 재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북한에 대한 '로키(low-key) 대응'을 이어가면서도 대북제재 위반 및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원칙적 대응 의지를 거듭 피력하고 있다.
내부결속에 치중해온 북한 역시 '침묵'을 깨고 대외 메시지를 연이어 내놓는 분위기다.
최근 북한은 문씨을 미국으로 인도한 말레이시아 사법부 판단에 강하게 반발하며 '미국 배후설'을 꺼내 들었다. 북한은 현재 말레이시아와 국교 단절을 선언하고, 외교관 등 현지 인력을 본국으로 철수시킨 상태다.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단교 선언 직후 사실상 북한 외교관들에 대한 '추방'을 명령하자 서둘러 짐을 뺀 것이다.
김유성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대리는 지난 21일(현지시각) 현지 대사관을 떠나기 전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사건은 미국의 극악무도한 정책으로 만들어진 반북(反北) 음모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9일 성명에선 문씨 미국 송환이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하려는 미국의 극악무도한 적대시 책동과 말레이시아 당국의 친미 굴욕이 빚어낸 반공화국 음모 결탁의 직접적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의 배후조종자, 주범인 미국도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무엇보다 북한이 이번 사건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연관 짓고 있어 강대강 선대선 원칙에 따라 '강경 대응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앞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개인 명의 담화에서 "미국은 자기들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계속 추구하는 속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 것인지를 잘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군사도발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FBI가 (문씨를) 조사하고 있고 아마 재판을 통해서 형을 살게 할 것 같다"며 "이제 북미관계는 아주 암울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