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 따로 감상하기 어려운 OST
정재일 음악 감독, '오징어 게임'으로 HMMA 수상
'사운드 오브 뮤직'(1965), '러브레터'(1999), '봄날은 간다'(2001),'냉정과 열정사이'(2003),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의 공통점은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까지 사랑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영화 음악은 영상의 스토리에 부합하고, 영상의 전개에 몰입을 돕는 기능을 한다. 아름다운 선율로 만들어진 영화 음악은, 꼭 영화와 함께 즐기지 않더라도 독자적으로 감상이 가능하며, 오래도록 영화를 기억하게 만든다.
예로 '냉정과 열정사이'의 대표적인 '히스토리'(History), '러브레터'의 '윈터 스토리'(Winter Story) 등은 아직까지도 방송계에서 BGM으로 많이 쓰이며 대중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소재로 사용된다. 개봉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내년 2월 20일 '시네마 필름 콘서트 러브레터& 냉정과 열정사이'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마녀 배달부 키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바람이 분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음악을 담당했던 하사이시 조의 음악도 12월 연말 투어를 통해 대중과 만난다. '히사이시 조 영화음악 콘서트'는 영화음악의 거장 작곡가 히사이시 조의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을 60인조 풀편성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이 공연들은 영화의 스토리, 그리고 주인공만큼이나 아직까지 음악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영화 음악의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영화의 장면을 부각시키고 사람들의 몰입을 돕는 역할에는 변함이 없지만, 영화와 음악을 따로 즐기기는 다소 힘들어졌다.
최근 개봉 48일 만에 150만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으로 사랑받고 있는 '듄' 은 한스짐머가 참여한 OST가 영화의 신비로움을 한껏 고조시켰다. 한스짐머는 1만 191년이 배경으로 한 미래에 부합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수개월간 영화에 들어갈 새로운 악기 배라에 힘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목소리로 구현된 독특한 '듄'의 음악은 스페이스 오페라란 장르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지만, 이 역시 영상과 따로 분리한다면, 음악 자체로 즐기기에는 진입장벽이 따른다.
한국인 최초로 2021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Hollywood Music In Media Awards·HMMA)에서 수상의 영예를 거머쥐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정재일 음악감독의 음악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일반적인 영화라 보기엔 어렵지만, OTT에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가운데, 정 음악감독의 스타일도 이 같은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그는 '오징어 게임'에서 어린이들의 놀이를 생존게임에 접목한 내용에 맞춰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널리 쓰이는 리코더나 소고, 캐스터네츠 등을 사용한 배경음악으로 아이러니하고 괴기스러운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 영상이 배제된 채 음악만 감상한다면 불친절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영상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음악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 같은 변화는 관객들에게 환영받는 장르가 달라진 것이 한몫했다. 서정적인 음악을 필요로 하던 멜로, 휴머니즘 대신, 스릴러를 필두로 SF, 미스터리 등의 장르물들이 더 많이 등장하며 주인공들의 감정을 대변하기보단, 상황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며 영상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는 좋고, 나쁘다로 평가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어도 영상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영화 음악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음악과 영상이 함께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면,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하면 음악도 함께 떠오른다면 영화 음악으로써의 역할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