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정책 동참은 좋지만, 시간·비용 등 문제
업계 “방향과 속도 조절 필요해” 주장
최근 식음료업계를 중심으로 환경에 대한 고민을 담은 다양한 제품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업계의 말 못할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제품의 상징성을 잘 살린 ‘착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 곳곳에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시간과 비용 외에도 난관이 수두룩하다는게 업계의 설명이다.
최근 식품 업체들의 앞다툰 친환경 행보가 지속되고 있다. 과거엔 단순히 재활용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머물렀다면, 요즘에는 소비자와 환경 ‘두 토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ESG경영에 발맞춘 결과로 풀이된다.
일례로 플라스틱이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자 아예 회수작업까지 담당하는 기업도 등장했다. CJ제일제당의 경우 지난달 햇반 용기를 수거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일반 쓰레기처럼 버려지거나 소각되는 일이 많아지자 직접 거둬들여 재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다 쓴 생수병을 회수하는 기업도 늘었다. 제주삼다수는 지난해 5월 회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롯데칠성음료도 같은 해 8월부터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아이시스 생수병을 회수하고 있다. 회수한 빈 병은 에코백, 유니폼 등으로 재활용 하고 있다.
기존 플라스틱을 대체제로 교체하는 작업 역시 활발하다. 롯데제과와 해태제과 등 제과업계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과자류 포장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포장재와 트레이를 다른 소재로 대체하거나 대체를 위한 개발을 진행 중이다.
마가렛트, 카스타드 등을 박스과자로 부르는데, 이들 과자는 질소가 충전돼 있는 봉지과자에 비해 형태 유지가 어려운 만큼 플라스틱 트레이 사용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올해를 기점으로 플라스틱 트레이는 자취를 감출 예정이다.
문제는 교체 과정에 다양한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친환경 경영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앞장서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개발에 드는 시간이나 투자 비용, 원재료비 상승에 따른 가격 조정 등이 주된 고민거리로 알려졌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플라스틱 트레이를 대체할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도 어렵지만, 설비를 새롭게 하는 과정에서 수십억원의 비용이 든다”며 “내구성이 떨어지지 않게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제품 규격 자체를 바꿔야 하는 데다, 원재료비 상승에 따른 어려움도 있다”고 설명했다.
제품 교체 후 마케팅 작업에 따른 어려움도 상당하다. 무라벨 생수의 경우 과거에는 상품명 및 필수 표기사항인 용량, 수원지, 무기질 함량 등의 상품정보를 라벨지에 인쇄해 제품 몸통에 부착 판매했지만, 무라벨로 바뀌면서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필수 정보 전달이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해당 제품의 용기만 특이하게 제작할 수도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궁극적으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재활용 확률을 높이는 것에 무라벨 제품 출시 목적이 있는데, 이런 속 뜻을 역행하는 꼴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라벨이 없어지면서 소비자가 제품을 직관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워 졌다는 점도 빠질 수 없는 고민거리다. 기존에는 생수에 부착된 라벨지가 하나의 광고판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타사와 구분이 어려워 판매 경쟁도 이전보다 치열해진 것이다.
생수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특정 제품을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라벨 디자인이나 뚜껑 색상 등에 신경을 썼지만, 무라벨 바람이 불면서 친환경이나 가치소비 등을 강조해 기업의 이미지를 판매하는 쪽으로 마케팅 방향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빨대를 없애는 작업 역시 골치가 아프긴 마찬가지다. 제품에 달린 빨대를 없애면 그만이지만 한 산업의 축을 지탱하고 있는 빨대 제조사들이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데다, 아이를 가진 소비자의 불편 등이 뒤따라서다. 방향과 속도 조절이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소비자 인식도 넘어야 할 산이다. 농심은 최근 ‘무파마탕면’의 묶음 포장을 기존 빨간색 비닐에서 투명한 비닐로 교체했다. 하지만 메인 제품인 신라면은 교체하지 못했다. 패키징이 변경되면 고객들이 제품이 달라졌다고 느낄 수 있어 복합적으로 고려할 부분이 많아서다.
이 밖에도 주류업계 유색 페트병 교체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맥주는 현재 갈색 페트병으로 생산되고 있는데, 무색으로 변경될 경우 직사광선, 자외선 등으로 인해 맥주 품질 저하가 우려돼 대체제 개발을 두고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 전체 맥주 시장의 15%를 차지하고 있는 맥주 페트병은 가볍고 편리한 데다 생산 단가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재활용이 어려워 환경문제를 일으킨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때문에 주류 제조사들은 맥주보다 소주를 먼저 순차 도입한 바 있기도 하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8월 업계 최초로 투명 페트병을 선보였지만, 라벨이 제품 전체를 덮어 햇빛을 막는 방식을 택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투명 페트병 내부를 볼 수 없는 구조다. 대신 손 쉽게 라벨을 벗겨낼 수 있는 ‘Tear-Tape’ 방식을 써 재활용이 쉽도록 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갈색 맥주 페트병은 생산 단가가 낮고 가벼운 데다 많은 양을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큰데, 투명병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제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안정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크다”며 “생산 단가가 오르면 가격 경쟁력 역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