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예방 혁신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토론회' 개최
사후처벌 위주의 산업안전정책이 중대재해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주요 선진국들의 사례를 따라 예방중심 안전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산재예방 혁신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올 초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되고 있으나 법령을 둘러싼 사회적 혼란만 지속되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획기적인 산재감소 효과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그간 경영계는 엄벌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중대재해를 감소시키는데 한계가 있으며, 사후 처벌보다는 주요 선진국들이 추진 중인 사전 예방중심의 안전정책 사례를 적극 검토할 것을 주장해 왔다”면서 “중대재해를 효과적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산업안전정책의 기조를 선진국가와 같이 지원과 예방중심으로 전환하고, 기업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 행정조직으로 하루빨리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총 조사결과에 따르면 영국 등 선진외국은 전문화된 산업안전조직을 구축하고 현장에서 실효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다양한 지침을 개발·보급하고 있었으나,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행정은 기업의 예방을 지원하기보다 사고발생 기업에 대한 처벌과 작업중지와 같은 제재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많았다.
주제발표를 맡은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중대재해법령 및 정책운영의 문제점으로 ▲실효성 없는 안전규제 양산 ▲부실한 재해원인조사 ▲소홀한 기술지침 제·개정 노력 ▲불명확하고 모호한 도급인 의무와 책임 ▲행정인력의 전문성 부족 ▲지속가능성 없는 중대재해법령 등 8가지를 지적했다.
정 교수는 “안전법령 관계부처가 사고발생 시 즉흥적으로 법과 규정을 만드는 산업안전정책으로 인해 법령 간 규제와 점검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고, 집행기관이 난립하면서 행정비용은 많이 들어간 반면, 법의 실효성과 규범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산업안전 행정조직의 전문성 부족으로 사고원인 규명을 통한 실효적인 재발방지대책 수립보다 법 위반 적발 등 사후처벌에 집중하고 있으며, 정작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법령에 대한 해설지침과 매뉴얼 개발·보급과 같은 예방활동에는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법 적용 및 해석과 관련해 기업에서 가장 애로를 겪고 있는 작업중지명령,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대상 및 범위, 건설공사발주자 판단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집행기준을 정부가 제시하지 않아 현장 혼란을 심화시키고 감독관의 자의적 법 집행을 초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중소기업에 대한 재해예방사업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으며, 처벌강화만이 마치 산재예방의 유일한 해답인 양 여기는 엄벌만능주의 접근으로는 기업의 안전보건 역량 제고도, 중대재해의 획기적 감소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법령 및 정책운영의 혁신방안으로 “우리나라도 처벌 중심의 법제도 정책에서 탈피하여 중대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법령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서 “산업안전행정 조직의 전문성 강화 노력이 현행 정부 정책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도급작업 등 안전규제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행정규칙·지침 마련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전면 개편 ▲중소기업 재해예방사업의 실효성 강화 ▲전문화된 산재예방조직 구축 등을 혁신방안으로 제안했다.
정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도 “산업안전보건법 등 종전의 안전보건관계법과의 관계가 태성적으로 모호하고 중복되는 내용도 많아 규범력,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명확하거나 모호한 규정으로 위헌소지가 많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지속가능한 법이라고 할 수 없다”며 “정의롭지 않은 법은 조속히 없애거나 바꾸는 것이 마땅하므로 동 법의 폐지 및 대대적 개편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혁면 연세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학계, 정부, 노사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패널로 참여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법·제도 개편과 합리적 행정운영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