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영 출연
제2회 충주단편영화제 본선(2017, 대한민국)
제7회 충무로단편영화제 본선(2017, 대한민국)
제7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코리아 프라이드 상영(2017, 대한민국)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편집자주>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제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
흔히 첫사랑을 겪을 때 '열병을 앓는다'라고 표현한다. 영화 '이상'은 요절 작가 이상(李箱·1910~1937)이 소설가 최정희(1912~1990)에게 자필로 쓴 편지 속 말을 인용해, 호정(박규영 분)의 첫사랑을 통과 중인 혼란스러운 감정을 일치 시킨다.
영화는 수업 중 호정이 대각선에 앉은 어떤 이를 훔쳐보며 프린트 물에 누군가를 열심히 그리며 시작한다. 대각선에는 준영(정의제 분)가 자리하고 있다. 마침 수업 종료를 울리는 벨이 울리자 자리에 일어나자 대각선에 앉아있던 준영의 곁에는 지은(배기림 분)이 있다.
지은은 호정의 가장 친한 친구다. 두 사람은 평범한 여고생처럼 학교에서 붙어 다니며 아지트에서 일상을 공유한다. 지은은 호정에게 준영을 향한 호감을 숨기지 않는데 그럴 때마다 호정의 심기가 이상하게 뒤틀린다.
어느 날 호정은 준영에게 찾는 책을 빌려주겠다며 지은 앞에서 둘 만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아지트로 데려간다. 창문 끝에는 몰래 호정과 준영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지은이 있다. 결국 호정은 지은 보란 듯이 준영에게 입을 맞춘다.
사실 호정이 좋아하는 건 준영이 아닌 지은이다. 문학 시간에 몰래 훔쳐보던 시선의 끝과 그림의 주인공은 지은이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중반까지 몽타주 기법을 적극 활용해 두 여고생이 한 남학생을 좋아하는 삼각관계로 유인하지만, 사실은 호정의 짝사랑이 지은이라는 것을 밝히며 반전을 준다. 당연히 이성 간의 관계라고 바라볼 사회적 편견에 대한 지적이다.
영화는 처음 느끼는 감정에 예민한 호정의 심경 변화를 따라간다. 호정의 마음은 반짝반짝 빛나지만, 모서리가 뾰족한 별의 모양을 하고 있다. 각진 모서리는 결국 충동적인 행동으로 지은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결국 가장 상처를 받은 건 지은과 준영 모두 잃게 될 호정이다.
전온세 감독은 호정의 손에 작가 이상의 '종생기'를 얹어주고,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러브 레터의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적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라는 구절을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반복해 들려준다. 엉망진창으로 끝나게 될 호정의 첫사랑에게 어쩐지 위로와 응원을 건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