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법정 처리시한 12월 2일
국회, 지난 20년 두 차례만 지켜
예년보다 심각한 정치적 갈등에
사상 첫 준예산 편성 가능성↑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예산안 항목 하나하나에 대한 여야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물론 검찰 수사, 이태원 참사 등으로 정치적 상황마저 극단으로 치닫는다. 현재 분위기로는 헌법에서 명시한 예산안 처리 시한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상 최초 준예산 편성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는 지난 17일부터 예비심사를 마친 8개 상임위원회 소관 예산안에 대한 심사를 시작했다. 현재 8개 위원회 심사에서는 정부안과 비교해 12조3284억원을 증액하고 2조5235억원을 감액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가운데 운영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등 일부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상임위는 예비심사조차 마치지 못했다. 일부 상임위는 심의 자체가 파행되면서 심사가 계속 지연 중이다.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다 보니 여당과 야당 모두 양보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야당은 청와대 이전, 용산 공원 조성 등 윤석열 대통령 대표 공약 예산 저지에 사활을 건 모습이다. 반대로 여당은 새 정부 국정과제 예산을 사수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대통령실 이전이나, 용산공원 조성 사업은 여야가 조금도 접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 시설관리 및 개선사업(29억6000만원), 국가사이버안전관리센터 구축 예산(20억원), 특수활동비(82억5100만원)을 삭감을 고수하고 국민의힘은 원안 통과를 양보하지 않고 있다.
용산공원 조성사업은 국토교통위 예결소위에서 민주당이 단독으로 303억원을 삭감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정부안보다 6조3840억원 증액하기도 했다.
예산안 심사 가운데 가장 큰 쟁점인 세제개편 관련해서는 조세소위 구성과 심사 일정에만 합의했을 뿐이다. 예산부수법안 가운데 하나인 금융투자소득세 유예, 법인세 인하 등을 두고서는 지금도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예산안 자체를 두고 반대가 극심한 가운데 정치적 상황은 최악이라 할만하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최측근인 정진상 당대표 정무조정실장 구속으로 전투력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단독으로 추진할 가능성을 높이면서 대치 국면을 확대하고 있다.
국회가 12월 2일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까지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정부안이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 경우 여소야대 정국에서 부결 가능성이 크다. 본회의에서 부결되면 정부는 ‘일사부재의(의회에서 한 번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내에 다시 제출할 수 없다)’ 원칙에 따라 예산안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다시 예산을 짜고, 이를 국회에서 재심사하는 데 걸리는 물리적 시간을 고려하면 결국 예산안은 올해 안으로 처리되기 힘들다.
해가 바뀌기 전 예산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정부는 ‘준예산’을 편성하게 된다. 준예산은 국회에서 예산 의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예산안이 확정될 때까지 공공기관 등 법률에 따라 설치한 기관의 시설 유지비와 운영비 등만 집행하는 제도다.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을 계속하기 위한 경비 등을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 있는 잠정 예산이다.
다만, 지금까지 준예산을 편성한 적은 없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20번의 예산안 심의 가운데 단 두 차례만 법정 시한 내 예산안을 처리했지만, 나머지 18번 모두 준예산 편성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준예산 사태가 빚어질 경우 사실상 공무원 인건비 등 최소 경비만으로 정부를 꾸려야 하기 때문에 국가 사업 전반에 큰 파장이 불가피하다”며 “국회도 이런 문제를 잘 알기 때문에 그동안 준예산 편성 사태는 막아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상 첫 준예산 편성 우려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예산안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는 건 사실 당연한 거지만, 지금의 여야 대치는 어느 때보다 정치적 갈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며 “단순히 의견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인 힘겨루기 양상으로 흐르면서 사상 처음으로 준예산 사태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고 우려했다.
▲[발목잡힌 예산안②] 헌법 우습게 여기는 국회, 20년 동안 단 두 번 지켰다…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