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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영화 뷰] 범죄극 속에서 사라지는 '가해자의 서사'


입력 2023.02.21 08:07 수정 2023.02.21 08:07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가해자의 목소리는 필요 없어"

범죄극에서 가해자 중심의 서사를 극적으로 연출하는 것은 흔한 공식이었다. 주로 범인이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한 트라우마나, 애정결핍 등이 주 소재로 등장하고는 했는데, 이는 동정심을 유발하고, 사건 자체의 본질이나 피해자의 고통을 관심 밖으로 밀어내는 부작용이 일어나고는 했다.


시청자들 역시 사회에서 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피로감이 높아지자 가해자의 서사가 오히려 불편하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콘텐츠도 여기에 발맞춰 범인의 행각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여지 자체를 제거하고 있다.


영화 '비상선언', 넷플릭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쿠팡플레이 '안나', SBS '트롤리'가 눈에 띄는 예다. 공중에 뜬 비행기 안에서 생화학 테러를 일으킨 '비상선언'의 류진석(임시완 분), 사람들의 스마트폰을 주운 후 개인정보를 범죄에 활용하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우준영(임시완 분), 악의 없는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안나'의 안나(정은채 분), 3선 출마를 앞두고 있는 재선 국회의원이지만 성범죄자였던 '트롤리'의 남중도(박희순 분)의 서사나 악행 이유는 극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와 관련 '비상선언'의 한재림 감독은 "류진석은 재난을 상징한다. 재난은 언제나 쓰나미처럼 이유 없이 오지 않나. 류진석은 여느 자연재해처럼 아무 이유 없이 왔다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재난이 지나간 후,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하는 부분에 더욱 집중하고자 했다"라고 류진석의 범죄에 이유가 없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트롤리'의 류보리 작가는 성범죄 가해자의 목소리는 드라마에 전혀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서사를 지움으로써 악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한결 더 수월하게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임시완은 '비상선언' 인터뷰 당시 "진석이 서사가 없다는 게 다른 캐릭터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어쭙잖은 당위성을 가지고 연기하느니, 애당초 서사가 없는 악역을 연기하는 것이 오히려 표현의 한계가 없어 더욱 흥미로웠다"라고 전했다.


또한 배우 입장에서 악역을 맡으면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까 우려를 하기도 하지만, 서사 없는 '절대 악'을 연기한다면 오히려 대중이 캐릭터 자체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


무엇보다 순작용은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하는 동시에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해 예외적인 사건으로 인식하게 한다든지, 가해자의 행위를 축소화하거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지 않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이제 피해자를 도구화하는 설정은 낡은 인식이 되어가고 있다. 피해자들을 트라우마의 희생양으로 그리지 않아도 개연성 아래서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유지할 수 있는 범죄극들이 새로운 공식을 써내려가고 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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