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기업 인텔 제품을 이름만 바꿔 출시했다는 의혹을 받은 중국 반도체 기업이 인텔의 지원을 받은 사실을 결국 시인했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광둥성 선전에 본사가 있는 컴퓨터 하드웨어 제조업체 파워리더는 지난달 6일 자체 개발했다고 발표한 1세대 '파워스타 중앙처리장치(CPU) P3-01105' 칩에 대해 "인텔의 지원으로 개발한 맞춤형 제품"이라고 털어놨다.
리루이제 파워리더 회장은 지난 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웨이보 계정에 올린 성명에서 이같이 밝히고 "우리는 (이와 관련해) 국가나 지방정부의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워리더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신진 세력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연구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은 독자 개발한 반도체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파워리더는 앞서 파워스타 CPU를 발표하면서 인텔의 CPU 칩인 'x86 아키텍처'에 기반해 개발했다고 소개하며 파워스타 CPU가 장착된 PC 등도 함께 출시했다. 연간 150만대라는 판매 목표도 공개했다. 1997년 설립한 파워리더는 산업용 서버와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해왔으나, 반도체를 개발한 이력은 없다.
이에 IT·디지털제품 전문사이트 톰스하드웨어는 캐나다의 성능측정 사이트 긱벤치(Geekbench)가 진행한 CPU 비교시험(벤치마크 테스트) 결과를 인용해 파워스타 CPU가 사실은 x86의 상표만 바꿔치기한 '라벨갈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긱벤치는 지난달 26일 바오더의 '파워스타 P3-01105 CPU'의 핵심 매개변수(파라미터)들을 공개하면서 그것이 인텔의 '코어 i3-10105 코밋 레이크 CPU'와 동일한 칩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만일 긱벤치의 발견이 사실로 확인되면 바오더의 파워스타 CPU는 2006년 사기로 드러났던 '한신반도체' 사건에 이어 중국의 반도체 자립에 또다시 먹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진 상하이자오퉁대학 마이크로전자학원장은 2006년 5월 거액의 정부예산을 들여 3년 전 개발했다고 주장한 획기적 DSP(디지털신호처리 프로세서) 반도체 칩 '한신 1호'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파면됐다.
천 교수는 2003년 180나노 첨단 DSP 반도체를 개발했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밑에서 일한 한 연구원이 '한신 1호'가 사실은 미국 모토로라의 '프리스케일 56800 칩'을 교묘히 날조한 것이라고 폭로하면서 사기극이 드러났다.
이번 사건을 놓고 인텔, ARM 등의 핵심 반도체 기술 없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는 진단이 나온다. 실제로 중국은 세계적 반도체 설계기업인 ARM에 지속적인 구애를 보내고 있다.
장광쥔 중국 과학기술부 부부장은 지난달 30일 베이징에서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중국 기업·대학·연구기관 등과의 협력 강화를 촉구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ARM은 중국 사업부를 완전히 철수하려는 중이다. 미·중 반도체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중국 고객에게 첨단기술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게 주된 이유다. 다만 중국 정부가 매각 승인을 1년 이상 미루면서 ARM의 중국 철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