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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비극을 섬세하고 초연하게 '행복의 나라' [볼 만해?]


입력 2024.08.14 14:47 수정 2024.08.14 21:06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누구나 꿈꾸는 '행복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추창민 감독은 현대사 민주주의 암흑기였던 야만의 시대에 관객들을 데려와 2024년에도 이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영화는 상상력을 가미해 시계를 1979년 10월 26일로 돌린다.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 분)가 체포됐고, 법정은 가부가 아닌 승패를 가리는 곳이라 생각하는 정인후(조정석 분)이 그의 변호를 맡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1979년 발생한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이 배경이 된다. 주도한 김재규 정보부장의 이야기는 많은 미디어에서 다뤄졌지만 추창민 감독은 직속 부하로 거사에 함께한 박흥주 육군 대령과 그를 변호한 태윤기 변호사와 재판 변호인단에 초점을 옮겼다.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정인후.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니고, 박태주에게 원칙이 아닌 타협을 제시하기도 한다.


군인으로서 신념을 굽히지 않는 박태주를 만나며, 민주화 운동을 한 대학생들을 위해 체포된 아버지, 나 혼자 살겠다고 누군가를 파는 행위를 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만 박 대령에게서 겹쳐 보인다.


재판은 자꾸만 박 대령에게 불리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전상두(유재명 분)는 재판을 감청하고 자신의 뜻대로 휘두르는 걸 숨길 생각이 없다.


거사가 이뤄진 후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함께 있었던 육군 참모총장을 어렵사리 설득해 증인 참석을 약속받지만 전상두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으로 육군 참모총장의 팔 다리를 묶어버린다.


정인후가 하지 않은 건 하나 뿐이다.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전상두 앞에 무릎을 꿇는 것. 전상두가 골프공을 날릴 때마다 뛰어가 공을 주워오며 악착같이 박태주를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그러나 전상두는 처참하게 그를 뭉개버린다. 앞으로 대한민국에 펼쳐질 야만의 시대의 예고편인 셈이다.


실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만큼 우리 모두 결말을 알고 있다. 전상두는 모두를 밟고 자꾸만 올라서고, 그에게 반대하는 이들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추 감독의 ‘행복의 나라’는 개인의 비극이 나라의 비극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섬세하게 들여다 보며 우리가 '행복의 나라'를 꿈꿔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행복의 나라'는 지난해 사망한 고(故) 이선균의 유작으로 마지막 박태주 대령의 눈빛과 대사 한 마디가 고인의 현실과 겹쳐 보인다. 담담하게 떠나가는 박태주의 얼굴과 비탄스러운 정인후의 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14일 개봉. 러닝타임 124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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