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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토로’ 안세영이 간절히 찾고 있는 어른, 계실까 [기자수첩-스포츠]


입력 2024.08.17 07:00 수정 2024.08.17 09:11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안세영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누군가와 전쟁하듯 이야기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 보호에 대한 이야기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 번은 고민해주시고 해결해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본다.”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직후 안세영(22·삼성생명)은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선수 부상 관리, 선수 육성 및 훈련방식, 협회의 의사결정 체계, 대회 출전 등에 대한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선수들과 관련된 보상 체계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안세영은 개인 스폰서 제한을 풀어달라는 의사를 밝혔다. 현재 협회는 공식 후원 계약 외 개인 스폰서에 대해서는 일부만 허용해 갈등을 낳고 있다.


안세영은 이전투구 양상의 공방이 아닌 해당 문제들을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줄 어른을 찾았다.


‘세계랭킹 1위’ 국가대표가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낸 직후 “분노가 원동력이었다”는 작심 발언을 토하면서 국민적 관심이 크게 높아진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도 즉각 반응했다.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가 “윤석열 대통령도 사안을 보고받아 인지하고 있다”고 밝힌 가운데 파리올림픽 개막 전부터 체육계 전반에 대한 대대적 개혁을 예고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는 대한배드민턴협회를 상대로 감사에 착수했다.


미흡한 선수 부상 관리, 복식 위주 훈련, 대회 출전 강요 의혹 등에 대한 경위를 파악하고, 국제 대회 출전 규정 등 제도 문제, 협회의 보조금 집행 및 운영 실태까지 종합적으로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회도 움직인다. 사격 레전드 출신 진종오 의원(국민의힘) 등은 “묵과하지 않겠다. 꼼꼼하게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파리올림픽을 마친 후 감사원 출신 감사관, 국민권익위원회 출신 감사관 등을 포함한 조사위원회를 꾸려 진상 파악에 나설 예정이다.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자체적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체육계 관계자는 “안세영 폭탄 발언의 파장이 크다. 안 움직이는 것보다는 낫지만, 매번 그렇듯 잠깐 반짝하는 이슈로 끝날 가능성도 크다”고 우려하면서 “각 기관의 이해충돌 아래 선수들이 안고 있는 진짜 문제가 수면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다. 정말 어렵게 불씨가 생겼는데 잘 살려서 이번 기회에 대대적 개혁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4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선수단 본진이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등과 함께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 뉴시스

그러나 작금의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우려가 현실로 가시화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환영식만 봐도 그렇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 역대 최다 기록 타이인 1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고 ‘금의환향’한 대한민국 선수단에 대한 환영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상황은 이렇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13일 선수단 본진 귀국 직후 해단식을 겸한 환영행사를 인천공항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다. 취재진은 물론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과 장미란 2차관도 현장에서 대기했다. 그런데 이기흥 체육회장은 선수단과 함께 입국장에 들어선 뒤 소감문만 낭독한 뒤 정강선 선수단장으로부터 태극기를 건네받아 흔들었고, 장재근 진천선수촌장이 해산을 선언했다.


선수들은 환영이나 축하 인사도 받지 못한 채 흩어졌다. 일부 선수들은 “마땅히 축하받고 격려 받아야 할 우리는 환영식 의자에도 앉지 못했다”며 혀를 찼다. 문체부 관계자는 “체육회가 사전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계획을 바꿨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이기흥 회장이 정부를 향한 불만 표시라는 해석까지 나온 가운데 체육회는 지난 14일 “선수단의 피로, 행사장 혼잡 및 안전 등을 이유로 부득이 행사를 축소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문체부 측은 “체육회가 공항 제안에 따라 그레이트홀에서 사전 귀국했던 메달리스트까지 불러 행사를 준비 중이었다”고 반박했다.


대한체육회든 문체부든 두 기관의 해명과 반박은 큰 의미가 없다. 대한민국 체육을 이끌어가는 양측이 사전에 원활하게 소통하고 조율했다면 이런 촌극은 벌어질 수 없다. 정밀하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저 환영 행사일 뿐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환영 행사조차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안세영이 간절히 찾고 있는 ‘어른’은 존재하기 어렵다.


축제 분위기를 만끽해야 할 상황에서 체육계의 역대급 갈등은 폭염에 지친 국민들을 더욱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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