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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영화의 이유 있는 흥행 질주 [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입력 2024.08.17 14:00 수정 2024.08.17 14:00        데스크 (desk@dailian.co.kr)

대부분의 여름 성수기에는 대규모 블록버스터나 많은 돈을 쏟아붓는 액션 또는 SF장르와 같이 스케일이 큰 영화들이 관객들을 만났다. 그것이 아니라면 무더운 여름에 서늘함을 주는 스릴러 및 호러 등 공포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 공포영화는 불쾌함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어 관객의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지만 여름에는 공포라는 공식이 그동안 자리 잡아왔던 것이다. 반면에 로맨틱 코미디를 비롯한 코미디 장르는 장르적 특성상 여름보다는 봄이나 가을쯤에 개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올해 여름 극장가에서는 기존의 흥행 공식과 달리 코미디 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비행기 조종사인 한정우(조정석)가 사내 술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금전적인 압박에 시달리게 되자 동생인 한정미(한선화)로 위장해 다시 파일럿이 된다는 영화 ‘파일럿’은 현재까지 3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던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가 하필이면 귀신 들린 집으로 이사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핸섬가이즈’ 역시 관객들이 몰리면서 흥행세를 타고 있다.


이러한 코미디 영화의 흥행 추세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먼저 혼란스러운 현실에 실망한 관객들이 위안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름 성수기 극장가에는 재난영화, 범죄 액션, 역사물과 같은 심각한 장르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사회 비판과 현실을 고발하는 이야기로 극장을 메웠다.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한 사회문제를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하려 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사회가 변화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 심각하게 흘러갔다. 사회를 고쳐줄 정치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민보다 당파의 이익을 우선하면서 사회적 비리는 근절되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또한 무너지고 있다. 현실에서도 이렇게 힘들고 지쳤는데 심란한 영화까지 보고 나면 더 큰 피로감에 쌓이기 마련이다. 관객들은 잠시나마 웃음을 찾고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 가볍고 유쾌한 영화를 찾는 것이다. 잊고 싶은 현실을 굳이 극장에 가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이유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것도 배경이다. 필수재인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청년들은 집을 사기 어려워졌다는 현실에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벌어지고 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와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따라잡을 수 없는 경제적 불평등에 실망한 젊은 세대들은 현실을 비판하기에 지쳐 코미디 영화로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있다.


올해 날씨와 경기침체도 한 몫을 했다. 8월에 들면서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다. 서울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후 118년 만의 역대 최장 열대야를 기록하고 있다. 한낮의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밤낮으로 찜통더위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관객들은 무더위를 날려줄 수 있는 가볍고 편한 영화들을 찾고 있다. 여기에 경기침체로 예산이 부족한 여건도 코미디 영화 제작을 부추긴다. 재난, 역사, 범죄, 액션 영화에 비해 코미디 장르는 아이디어와 연기력만 갖추면 저예산으로도 흥행을 보장받을 수 있다. 영화 ‘핸섬가이즈’는 제작비 46억원이 투입된 손익분기점 100만명의 영화다. 현재까지 누적관객 177만명을 기록하는 동시에 베트남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하며 흥행 중이다.


사회의 거울인 영화에서 나타난 코미디 영화의 돌풍 현상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준다. 이러한 현상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그 원인과 배경을 정확히 인식할 때 우리 사회는 문제점을 해결해 발전할 수 있다. 지치고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코미디 영화가 참시나마 위안이 되길 기대해 본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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