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누워만 있는 김태희가 더 빛나는 이유
<김헌식의 문화 꼬기>연기력과 미모의 절묘한 상호관계
드라마 '용팔이'에서 배우 김태희는 대사가 거의 없었다. 병원 침대 누워있어야 하는 배역이었기 때문이다. 주원의 원맨쇼라고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였다. 김태희가 누워만 있는데도 드라마의 효과는 충분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냐 싶지만 오히려 그것이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6회까지 이런 서사구조를 가질 때 오히려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에 대해 비난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현실적인 조치다.
왜 그럴까. 그것은 기대불일치와 캐릭터의 니즈에 충실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대불일치부터 보면, 우선 매우 미모가 뛰어난 배우일수록 이런 현상은 가중된다. 이미지의 과잉은 연기력 논란을 일으키는 법이기 때문이다. 미모에 비례해 연기력의 기준도 높아진다. 예컨대 이는 소화해야할 대사의 양과도 밀접하다. 주인공이 될수록 많은 대사량을 소화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지의 아우라가 깨진다. 따라서 미모가 뛰어날수록 대사량을 적절하게 조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 배우들에게 바라는 점이 다를 수 있다. 연기파 배우와 이미지파 배우는 시청자의 니즈가 다르게 적용되는 사례이다. 이미지파 배우가 연기파 배우가 꼭 되어야 시청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력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그것에 연연하여 문제를 키우기보다는 현실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맞다. 이런 사례는 김태희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 이영애의 경우,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사실상 가장 연기를 잘한 것은 아역 배우들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히트로 모든 수혜를 받았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 대사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영애의 캐릭터와 부합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드라마 '신사임당'에서는 1인 2역을 소화한다고 한다. 그만큼 스스로 소화해야 하는 양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우려되는 부분이다.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 이영애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 캐릭터에 맞는 이미지의 구현이다. 자칫 잘못하면 기대불일치의 파국을 낳을 수 있다.
배우 이연희의 경우를 보자. 2013년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이연희는 그동안 있던 연기력 논란을 말끔히 씻었다. 그 연기에 대해 호평일색이었다. 그런데 2015년 '화정'에서 이연희는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갑자기 연기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일까.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이연희는 짧고 강력하게 등장했다. 몰입할 수 있는 여력이 좁혀졌다. 하지만 드라마 '화정'에서 이연희가 소화해야할 대사의 양과 스펙은 넓고도 많았다.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여성 배우가 젊거나 갑자기 주연으로 발탁되는 경우에 빈번하게 나타난다. 다른 배우들과 조화롭게 연기가 등장할 때는 미처 부각되지 못하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제작사들은 젊은 배우를 기용할 경우, 조연 배우들을 두툼하게 배치 포진시켜 이러한 문제점을 돌파해나간다. 하지만 트렌디 드라마는 이러한 점을 커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구나 새로운 장르에 많은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예컨대,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 출연했던 한가인이 대표적이었다. 첫 사극 출연에 소화해야할 내용은 많은데다가 역할도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 즉 무녀였다. 하지만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는 연기력 논란은 일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극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드라마 '블러드'의 구혜선이었다. 기존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와 전혀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연기력 논란을 낳았다. 하지만 이런 경우,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적응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은 해당 스타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제작진이나 수용자들에도 중요한 문제이다. 어쨌든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배우들에게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 가창력 있는 가수만이 뮤지션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때, 과연 드라마가 연극과 같은 공연양식인지 분별해 봐야 한다.
비주얼 퍼포먼스도 중요하다. 인정하고 수용해야할 것은 해야 오히려 수월한 콘텐츠의 제작으로 수용자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 넓게보자면 대중문화는 그 요구에 맞게 제공하며 자신의 입지를 유지한다. 원하는 콘텐츠는 다양하고 차별적이다. 현실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조율하여 작품을 실현시켜나가는 묘략이 필요하다. 연기력에 콤플렉스를 가질수록 오버하기 쉽고 오히려 이미지를 망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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