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대우조선 노조는 진정한 회사의 주인이다


입력 2015.10.17 09:00 수정 2015.10.17 09:54        박영국 기자

<기자의눈>"노동 강도 높여도 좋다, 회사만 살려달라" 주인의식의 발로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이 채권단에 회생 지원을 촉구하면서 조합원들도 회사 회생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은 지난 9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에서 조선노동자 공동연대파업에 참가한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거리행진을 하는 모습.ⓒ연합뉴스

배 한 척이 심한 풍랑을 맞아 침몰 위기에 놓였다. 무게를 줄이느라 짐을 바다에 버린 탓에 선원들의 식량과 식수 배급도 줄였다. 선장이 방향을 잘못 잡은 탓인지 변덕스런 날씨 탓인지 모르겠지만, 밑에서 열심히 노만 젓고 있던 선원들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원들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어떤 이들은 배를 풍랑으로 몰아넣은 선장을 원망하며 물에 뜰 만한 것들과 식량과 귀중품을 챙겨 바다로 뛰어든다. 반면 다른 이들은 힘을 합해 배를 살려내기 위해 새로 키를 잡은 선장의 지시에 따라 노를 젓는다.

최근 국내 조선업계가 처한 상황은 ‘풍랑을 맞은 배’에 비유할 수 있다. 대형 조선업체들은 진로를 해양플랜트로 잡은 선장(경영자) 때문인지, 변덕스런 날씨(유가하락) 때문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해양플랜트 부실’이라는 공통의 원인으로 일제히 조단위 적자라는 풍랑을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들을 대표하는 각사 노동조합의 행동도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고액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수 차례 파업을 단행했고, 최근에는 회사측과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도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데일리안 박영국 차장대우.
반면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정 반대의 노선을 걷고 있다. 어려운 경영 상황을 감안해 임금 동결에 합의해달라는 회사측의 요청을 받아들어 임단협을 체결했고, 그 과정에서 파업도 없었다. 최근 임금 체불로 인해 회사측과 갈등을 빚었지만, 근로자의 기본 권리인 임금을 못 받는 것에 대해 노조가 침묵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보다 더 의미 있는 행동은 최근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지난 16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채권단은 대우조선의 회생을 위한 신속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해 달라. 그렇게 한다면 조합은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구성원들과 함께 생산성 향상을 통한 공정만회 등 노동조합과 구성원이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모든 것을 다 하겠다.”

‘근로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노조가 스스로 근로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이는 것을 감수하겠다고 자처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더구나 그 대가로 요구한 것은 임금 인상도, 수당 지급도 아닌 ‘회사 회생 지원’이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회사를 어렵게 만든 경영진을 원망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책임을 나눠지고 회사 회생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대인배다운 모습도 보였다.

“조합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회사가 대규모 손실이 발생해 채권단의 지원으로 회사를 회생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최근 회사와 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서도 회사를 위한 따끔한 충고로 받아들이겠다.”

단지 수동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노조 자체적으로 ‘현재 회사 경영위기의 원인은 해양플랜트 생산 및 인도 지연에 따른 것’이라는 판단 하에,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자신들의 역할이 ‘지연 프로젝트의 적기 인도를 위한 노력’임을 파악하고 실천을 다짐하는 현명함도 보였다.

회사와 노조, 각 개별 조합원, 심지어는 경영진까지도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임을 인지하고, 회사가 살아야 내 일터도 지켜낼 수 있다는 절박함과 주인의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위기에 처한 배의 운명은 선원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결정된다. 선원들이 각자 살 길을 찾아 물에 뜰 만한 것들과 식량과 귀중품을 챙겨 바다로 뛰어든 배는 선체의 목재가 뜯겨나간 채 풍랑에 시달리다 침몰한다. 물론 바다에 뛰어든 선원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반면, 선원들이 한마음으로 노를 힘차게 저은 배는 고난은 있을지언정 언젠가는 풍랑을 빠져나온다.

풍랑에 흔들리는 ‘대우조선해양호’를 지켜내기 위해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려준 대우조선해양 노조야말로 진정한 대우조선해양의 주인일 것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