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이세돌 “너무 기쁘다...5국은 흑돌 잡겠다”
집념의 승부사 신의 한 수‘78수’
구글 알파고 개발팀 “이 9단의 승리 귀중한 정보”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값어치로 매길 수 없는 1승이다”
이세돌 9단이 구글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에 감격의 첫 승을 거뒀다. 앞서 3번을 내리 패하고 4번째 대국에서 끝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슈퍼 컴퓨터 1202대가 연결된 최신 알고리즘 기술로 무장한 컴퓨터를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 이긴 것이다.
이날 이세돌 9단은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4국이 끝난 후 열린 브리핑에서 기쁜 감정을 표출했다. 평소 감정 표현을 하지 않던 이세돌 9단도 그간의 부담이 컸는지 승리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활짝 웃으며 소감을 말했다.
이 9단은 “3대 1로 앞서고 있다면 한 판 졌던 것이 아프겠지만, 3패를 당하고 1승을 하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며 “이번 1승의 기쁨은 과거는 물론 미래의 경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값어치로 매길 수 없는 1승”이라고 밝혔다.
◇ 인간 묘수 ‘78수’ vs 알파고의 잇따른 실수
기적의 1승을 이끌어 낸 것은 오로지 이세돌 9단의 집념이라 할 수 있다. 이날 대국은 초반부터 알파고가유리하게 경기를 이끌어갔다. 알파고는 인간 바둑 기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변칙수로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백돌을 잡은 이세돌 9단은 침착하고 안정적으로 맞대응해갔다.
승부는 중반, 중앙에서 갈렸다. 알파고는 중앙까지 거대한 집을 만들었으나, 이 9단은 중앙 삭감을 하면서 알파고의 집안에서 수를 내었다. 순간 알파고는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남발하며 빈틈을 보였다. 이를 놓치지 않은 이 9단은 ‘78수’로 중앙 흑 한 칸 사이를 끼우는 묘수를 날렸다.
이후 순식간에 기세는 이세돌로 기울었다. 알파고는 해당 수에 재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실수를 남발했다. 결국 알파고는 180수만에 이세돌 9단에 항복을 선언했다. 불계패를 당한 것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를 통해 “78수로 알파고가 혼란을 겪었다”며 “87수때는 승률이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데미스 하사비스 CEO는 대국이 끝난 후 브리핑에서 “이세돌 9단의 묘수와 복잡한 수에 알파고의 실수가 나왔다”며 “오늘의 패는 알파고에게 매우 소중한 정보로 영국으로 돌아가면 분석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 알파고 약점 노출...5국 이세돌 유리
그동안 알파고는 대국을 진행하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빈번히 보여줬다. 초반에는 실수로 판명되다가도 1국부터 3국까지 승리를 거두면서, 결국 해당 수는 실수가 아닌 묘수로 판명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 4국에서 보여준 실수들은 패를 거둔만큼, 묘수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구글측의 설명이다. 데미스 하사비스는 “알파고의 수들이 추후에 묘수로 밝혀질 수도 있는데 게임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오늘 둔 변칙수들은 실수”라고 판명했다.
이는 알파고도 약점을 갖고 있고, 인간의 전략으로 이같은 단점들이 노출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 9단은 “알파고가 대국에서 노출시킨 약점은 △백보다 흑을 선으로 잡을 때 어려워 한다는 점 △예상치 못한 수가 나올 때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라며 “이번 경기에서는 백으로 이겼기 때문에 마지막 5국에서는 흑으로 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경기는 알파고가 중국 기보를 익힌 만큼 중국 룰을 따른다. 중국 룰에서는 백돌을 선으로 잡는 것이 더 유리하다. 백을 잡은 기사에게 덤 7.5집을 더 주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얻은 이 9단이 남은 5번째 경기에서는 흑돌로 승부하겠다는 특유의 승부 근성을 보인 것이다. 이세돌의 도발적인 요청에 구글 측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마지막 대국인 제 5국은 하루를 쉬고 오는 1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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