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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과 교정 못하는 절대권력...개헌이 답이다


입력 2017.09.02 06:34 수정 2017.10.16 10:06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국민적 분노 집권 내내 동력으로 활용할건가

무력 야당에 주눅든 언론 알아 기는 참모 인사참사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오후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복지부 ·노동부· 여성가족부 핵심정책 토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현 정부는 ‘촛불정신’으로 탄생했다고 자찬한다. 대선은 요식행위였던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돌이켜 보면 꼭 틀린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 야생마 같은 열정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성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선거도 그 연장선상에서 치러졌다. 잠시의 고민은 있었으나, 대안이 없다고 판단하고 폭주했다.

그러나 ‘국민적 분노’를 새 정부 집권기간 내내 권력의 동력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촛불정신’은 대부분의 민심이 그렇듯 한 정부를 띄우기도 하고 침몰시킬 수도 있다. 지금 정부는 그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위태위태하다. 침몰을 면하고 지속적으로 순항하기 위해서는 분노와 열정은 뒤로하고, 정상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조선시대 군왕들도 지금같이 무소불위(無所不爲)는 아니었다. 그 때도 현대 민주사회처럼 ‘언론의 견제’를 받았다. 언관, 간관들의 상소는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경계했다. 인사검증도 철저했다. 그 유명한 명재상 황희정승도 탄핵을 받고 물러나기도 했다. 잠시의 폭정도 있었으나, ‘반정’으로 왕을 쫒아내는 ‘참담한’ 일을 벌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전통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그런 ‘교정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은 동시대 외국의 타 왕조에 비해 오래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런 자기치유능력을 발휘치 못했을 때는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 내부의 당파싸움은 외부의 적을 더욱 강하게 했고, 더 큰 피해를 입도록 부역했다. 왕조는 존망의 위기를 처했고, 백성은 생사의 기로에 서야 했다. 그런 위기에 백성은 분연히 봉기했고 나라를 구했다. 임진왜란 때 왜는 조선백성의 봉기를 예상치 못해 낭패를 봤다. 그러나 그 에너지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1910년 우리는 나라를 잃고 일제의 신민으로 전락했다.

지금은 북핵으로 인해 ‘6. 25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해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상황인식이다. 그런데도 내부에서 정쟁만 난무한다. 새 정권은 폭주하고 야권은 사사건건 저항한다. 이 와중에 인사는 참사고, 재정은 고갈로 돌진하고 있다. 야권의 저항도 전 방위적이지만, 새정권의 폭주를 막을 정도의 힘을 갖지 못한다.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연초의 극심한 혼란을 경험한 국민은 그 원인을 제공한 현 야권(당시 여당)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정권을 견제해야 할 야당은 그렇게 무력해 졌다. 주눅이 든 언론도 용비어천가를 부를 뿐이다. 전 정권에서 그러했듯... 적어도 정권이 힘있을 때 바른말을 하는 ‘바보짓’(조선시대 언관, 간관들을 그 바보짓으로 수많은 희생을 겪어야 했다)을 하지는 못한다. 법원과 헌재같은 사법기관은 ‘사법파동’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혼란스럽다. 인사청문회를 기다리거나 진행중인 두 기관의 수장도 현 정권의 추천을 받았다. 인사권을 갖은 이들이 수장이 된다고 전제할 때, 기관의 구성원들이 정치적으로 초연해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최근 판결을 보면 ‘사법독립’이란 말이 쑥스러울 정도다. 민주사회는커녕 ‘언관’도 ‘간관’도 없는 왕조가 된 느낌이다.

왕조에서도 없던 폭주는 새로운 권위주의의 발로다. 정부에서 직언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알아서 기는’ 분위기다.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 관료주의가 살아나고 있다. 대통령은 ‘직언’과 ‘소신’을 주문하지만, 그도 직언을 하면 불편할 것이다. 그 불편함이 불쾌함이 되기 십상이다. 불쾌함을 야기해 피해를 감내할 정도로 사명감이 있는 각료와 참모도 별로 없어 보인다.

가장 현저한 권위주의는 ‘인사’로 나타났다. ‘인사참사’로 불릴 정도의 난맥이다. 이유정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까지 벌써 5명이 청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를 했다. 자진사퇴의 형식을 빌었지만, 청와대가 포기한 것이다. 어떤 배짱좋은 인사가 청와대 뜻을 거슬러 사퇴를 하겠는가? 문제는 인사검증 실패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윗선의 의지가 분명하면 실무자들은 반대의견을 낼 수 없다. 수많은 ‘인사’가 상식을 벋어나는 이유다. 권력자가 ‘파격(破格)’에 현혹될 수 록 더 그렇다. 새로운 권위주의의 징표가 ‘파격’이다. ‘파격’이 상시화되면 그 ‘파격’이 ‘정격’이 된다. 그러면 기강도 시스템도 무너진다. 상식도 무력해진다. ‘파격’이 신선한 것은 역설적으로 ‘정격’이 굳건할 때 뿐이다.

공영방송에 대한 압박도 심하다. 과거정권에서 보지 못한 과격한 수단까지 동원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기간 방송토론 주관사인 MBC를 찾았을 때부터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해당 방송사 지도부를 찾지 않고 분쟁의 상대편인 노조사무실을 찾아 격려했다. 그리고 ‘언론적폐를 척결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방송사가 차려준 잔칫상을 걷어차고 삿대질하며 욕을 한 격이다. 그 자체가 파격이었다.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집권 후에도 국정기획자문위, 방송통신위원장, 국무총리가 연이어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보장할 수 없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그리고 결국 6개월밖에 되지 않은 MBC사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해 끌어내려 하고 있다. 과거에 없던 ‘과격한 정치보복’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며 어떤 언론이 겁을 안 먹을 것이며, 어떤 언론인이 뉴스를 통해 직언을 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정치를 논할 때, 행위자 개인의 성향과 능력(행태주의)보다 시스템(구조주의)을 중시한다. 2차 세계대전 때 유태인 학살에 참여한 나치의 전범자들을 연구하면서 결론을 낸 것이다. 멀쩡한 사람이 잘못된 시스템에서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것이다. 같은 기준이 지금도 적용될 수 있다.

권력자가 아무리 소탈하고 소통을 중시해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듣기 좋은 소리에 끌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민주사회에서는 시스템으로 견제기능을 보장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정부는 내부의 상소도 막히고, 언론도 재갈을 물은 듯 하다., 권력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제 권력자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시스템은 한계가 있음이 확인됐다. 더 이상의 초인, 철인도 없어 보인다. ‘언론의 견제’, ‘3권분립’, ‘정권내부의 소통’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시스템을 바꿀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문대통령은 내년 개헌을 하겠다고 공약했다. 거듭 약속을 확인했다. 꼭 지켜지길 바란다. 또한 지금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유연한 정치권력시스템이 고안되고 관철되길 바란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격언을 다시 떠올린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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