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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기획┃아이돌 육성의 두 얼굴③] 법적 구속력 제로? 아이돌 생태계 변화 필요


입력 2020.07.23 07:24 수정 2020.07.23 15:54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유명무실한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표준 부속합의서

정산시스템-멘탈관리 시스템 등 개선해야

ⓒ픽사베이 ⓒ픽사베이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긍정적인 면은 케이팝의 산업화와 함께 여러 차례 조명되고 있지만, 그 이면은 말 그대로 ‘음지’에서만 다뤄졌다. 하지만 최근 이 부작용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거나, 심각하게는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시스템 개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또는 연습생) 표준 부속합의’와 ‘대중문화예술분야 연습생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지난해 3월과 11월부터 시행했다. 전자는 “청소년의 권익을 보다 명확하게 보호하고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자유선택권 △학습권 △인격권 △신체적·정신적 건강 △수면권·휴식권을 보장한다. 후자도 기획업자가 연습생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고, 우울증세 등이 발생할 시 본인 동의 아래 치료를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부속합의서 제정이 청소년을 폭력, 성폭력 등으로부터 보호하고 청소년 기본권에 대한 권리보호를 명확히 하는 등, 업계 내의 청소년 보호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과 보호자가 더욱 안심하고 대중문화예술활동을 영위하고 지원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실상 민사 계약상의 가이드라인일 뿐 법적 구속력은 전혀 없고, 가이드라인에 대한 패널티나 보상도 없다. 그렇다 보니 사실상 실효성이 전혀 없는 합의서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아이돌 출신 가수들에게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표준 부속합의서에 대해 물었지만 대부분이 이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고, 인지하고 있더라도 실제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다.


걸그룹 출신 가수 A씨는 “아이돌이나 연습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소속사의 역할”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의 의견이 반영이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 아이돌의 경우 숙소 생활을 하다 보니 부모님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많다. 사실상 회사가 제2의 부모님이 되는 식이다. 기획사와 아이돌이 상하관계가 아닌 동반자로서 인정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2의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인 만큼, 더 세심한 관찰과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이그룹 출신 가수 B씨 역시 무엇보다 아이돌을 한 명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려는 소속사의 인식 변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방탄소년단과 그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시스템을 예로 들었다.


앞서 빅히트는 2011년 워크숍을 통해 기획사와 아이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고, 방탄소년단을 영입하고 구성하는 단계에서부터 멤버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했다는 후문이다. 여느 아이돌 그룹처럼 숙소 생활을 하지만, 기획사의 엄격한 통제 보다는 그룹 내에서 각자의 역할을 멤버들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특히 B씨는 방탄소년단의 ‘휴가’ 시스템에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지난해에 방탄소년단이 한 달 동안의 장기 휴가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동안 아이돌 그룹이 무려 한 달이라는 시기의 장기 휴가를 받은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정산 시스템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B씨는 “연습생으로 뽑혀 들어갔지만, 그들이 나를 뽑았다고 해도 결국 빚을 안고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투자금을 갚기 위해서 기획사의 무리한 요구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바쁜 스케줄도 그 중 하나인데 그렇게 되면 학교생활에도 소홀하게 된다. 실제로 저 역시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등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아이돌 생활을 그만둔 후에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과 관계를 회복하느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지금까지 아이돌 생활을 하고 있었으면 또래 친구들과의 골은 더 깊어지고, 결국 회사에 귀속된 사람으로만 남았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팬들도 자신이 지지하는 아이돌이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직접 소속사에 반기를 들고 인격과 자유를 존중해 달라는 내용의 호소 글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관계자들은 아이돌의 인권에 대한 기획사의 인식은 부재하다고 지적한다. 뿌리 깊게 박힌 이 시스템, 더구나 ‘돈벌이’가 되는 시스템을 쉽게 버릴 수도 없다. 다만 업계에서는 꾸준히 공청회가 간담회, 워크숍 등을 통해 조금 더 건강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문제를 짚어보고 정비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할 시점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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