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 ‘애매모호’ ‘이적행위’ 네거티브로 수세 몰리는 분위기
말로만 단일화, 몰래 유불리 계산하는 안산수(算數) 이미지 바꿔야
안철수가 수세(守勢)다.
집권당은 이제 진절머리 나 싫지만, 보수 정당 국민의힘에는 아직 선뜻 정을 주지 못하는 중도층의 지명도 높은 제3후보 지지 경향으로 새해 첫날자(字) 각 언론 여론조사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선두 주자로 떠오른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의 입지가 2주일 만에 소리 나게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그에게 100% 여론조사로 후보를 뽑을 테니 당에 들어오라 했으나 그는 안 들어가겠다고 했다. 보수 야당 간판이 자기 표를 더해 주지 않고 오히려 깎을 것이란 이유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라는 식으로 제1야당 사람들의 맹공이 터져 나왔다.
이번 만큼은 쉽게 될 것처럼 보인 단일화 가도에 돌연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버린 것이다. 당 대표인 비대위원장 김종인의 ‘안철수 무시’ 독설(毒舌)이 워낙 단칼인 데다 공식 또는 비공식 후보들이나 소속 의원, 간부들도 100석이 넘는 제1야당이 단 3석 당에 끌려 다녀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이뤄진 듯 네거티브(Negative, 선거 과정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음해성(陰害性) 발언이나 행동) 전선에 일제히 뛰어들었다.
사람들은 네거티브는 네거티브라고 걸러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 주장에 빨려 들어가고 매몰(埋沒)될 뿐이다. “다들 겪어 보면 알 것, 안잘알(안철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다 부정적”(이준석)이라거나 “소통에 관한 한 문재인과 박근혜 과(科)인 그가 과거와 달라진 건 없다”(장진영)라는 안철수 내부자 출신들의 ‘고발’은 통렬하다.
안철수는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일관하다 갑자기 중대 결정을 혼자 해서 발표해 버리는 사람, 시작은 거창하지만, 끝에 가면 결국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는 용두사미(龍頭蛇尾) 정치인, 지금까지 최소한 3차례 단일화를 거부하거나 포기해 민주당 승리를 도운 이적행위(利敵行爲) 단골 선수라는 등의 낙인(烙印)에 수도 중도층 표심이 출렁이게 된 것이다.
26년 전인 1995년 초대(初代) 민선 서울시장을 뽑는 선거에서 초반에 압도적 선두를 달리던 박찬종이 그랬다. 그는 무소속 후보였다. 무균질(無均質)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메이킹 성공으로 집권 민자당(정원식)과 김대중의 민주당(조순)이 내세운 거물급 후보들보다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훨씬 더 많이 받았다.
그가 모델로 출연한 우유 신제품 광고상의 무균질이란 말이 원래는 성분이나 성질이 일정하지 않은, 즉 지방을 인위적으로 분해하지 않고 우유 성분 그대로 제품화한 것이라는 뜻이었는데, 그 우유 회사나 박찬종 공히 이를 무균질(無菌質, 균이 없는 고질(高質))이라는 의미로 상품화해 써먹었다. 그러나 그는 TV토론에서 유신 시절 공화당 의원으로서의 행적 등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흥분, ‘무균질’ 이미지가 순식간에 깨지면서 지지율이 조순에게 역전되기 시작했다.
박찬종은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언론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지만, 패인이 김대중과 김종필(민주당+자민련)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그의 이미지가 허상(虛像)이란 사실을 일반 시민들이 인식하게 되면서 지역감정(서울과 수도권에는 호남 1세대와 2세대 인구가 출신 지역 중에 가장 강세다)이 결합해 패배한 것이다. 거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독불장군(獨不將軍)이란 본모습이 노출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조순의 이미지였다. 그는 학자 (그의 <경제학 원론>을 공부하지 않은 사회계 대학생이 당시 거의 없었을 정도다) 출신으로서의 인품과 산신령 같은 얼굴 덕을 크게 봤다. 비록 말년에 대권 생각을 잠시 함으로써 그 이미지는 일부 훼손이 됐으나 파고 들어가면 향기롭지 않은 구석들이 더 많은 박찬종에 비해서는, 우유 상품으로 말하자면, Skim Milk(탈지유(脫脂乳))이었다.
안철수가 연초 여론조사 우위를 유지해 끝내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서려면 이 박찬종 망령(亡靈)이 어른거리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 전철(前轍)을 밟지 않아야 한다. 박찬종과 그는 대선 패배 후 그 잔여 인기로 서울시장에 하향 지원하는 점에서도 행로가 비슷하다.
가장 절실한 것이 이미지 관리 또는 수정이다. 수정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러려고 노력하는 모습만 보여도 거의 성공할 수 있다. 그 수정 노력은 애매모호한 태도 버리기가 첫째로 되어야 할 것이다. 투명하고 분명해야 한다.
안철수는 단일화가 자신으로의 단일화를 전제하는 것이 아님을 보다 확실하게 밝혀야만 할 것이다. 말로만으로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자기가 생각하는 단일화 방식을 당당하게 제시하라. 자신의 과거 참모들이나 동료들이 ‘늘 속으로 유불리(有不利)를 계산하는 주판알만 튕길 뿐 막판까지 말을 하지 않는 습성의 인물’이라고 하는 비판이 옳지 않음을 보이라.
그가 10년 전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한 것도 사실은 가족들의 반대나 차후 대선 출마 계획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몇 년 전 여러 사람들에게서 나왔었다. 이번에 종래 불출마 입장을 갑자기 번복하고 1년짜리 서울 시장 보선에 나가겠다고 한 것 또한 그의 차차기 대권 도전 계산과 관련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안철수는 이렇게 언제나 계산적인, 안산수(算數)의 이미지를 버리지 못하면, 박찬종처럼 역전패를 자초(自招), 교수와 기업인에서 성공한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정계에서 퇴출당하는 처지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기로(岐路)가 바로 이번 단일화가 될 것인데, 국민의힘 입당이야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는 일이었으니 남은 건 그가 ‘안잘알’ 네거티브 돌팔매질에 살아남으면서 정책 경쟁과 TV토론의 벽을 여하히 넘느냐에 ‘안철수로의 단일화’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턴 실력과 실체 싸움이다. 2021년의 독자들과 시청자들은 1995년 선거 때보다 더 똑똑하고 안철수보다 계산이 더 빠르다. 그리고 그들은 무균질(無均質)과 무균질(無菌質)도 구별할 줄 안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