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소녀시대 '홀리데이'로 데뷔
플레이리스트에서 음악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기쁨을 선사한다. 이 같은 노래 한 곡이 발표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들의 노력이 동반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 외 프로듀서, A&R, 엔지니어, 앨범 아트 디자이너 등 작업실, 녹음실, 현장의 한 켠에서 노래가 나올 수 있도록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봤다.<편집자 주>
김혜정 작사가는 2017년 소녀시대의 '홀리데이'로 데뷔한 후 B.A.P, 엑소 '파워', NCT127 '백야', 이달의 소녀 '목소리' 등 아이돌 그룹들의 노랫말을 만들었다. 작사 일 외에도 물리치료사, 작사 강의 등을 병행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김혜정을 만난 곳은 강남인디레코드 작사 워크샵이 진행되는 서초동의 한 연습실이다. 김혜정은 수강생들이 개사한 가사를 꼼꼼하게 피드백 해주며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었다.
"작사라고 하면 여유롭게 글을 쓰는 줄 알겠지만, 소수의 작사가를 제외하고는 본업이 있어요.(웃음) 저는 물리치료사, 플라잉랩 작사 수업, 강남인디워크샵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어요. 강의는 2018년부터 했고,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작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에서 에너지를 얻어요. 반응을 해주는 것도 좋고요. 제가 지식이나 기술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도 있지만 저도 학생들에게 얻는 것이 있어요. 학생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집에 가서 저도 또 열심히 작사를 하게 되고요."
처음부터 '작사가가 돼야겠다'란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노래방 가는 걸 좋아했던 그는 2013년 작사 학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를 느껴 배운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작사 학원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작사 학원이 제 눈에 더 띄었죠. 그때 선생님이 양재선 작사가님이었는데 칭찬도 많이 듣고 작사에 푹 빠질 수 있도록 잘 가르쳐주셨어요. 그래서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혜정은 작사를 할 때 우선 과제는 가수에게 어울릴 만한 주제와 키워드를 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2013년부터 변한 적이 없다.
"가수에게 어울려야 제 안에서 가사가 잘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의뢰가 들어오면 가수의 전 앨범을 다 들어보고 예능이나 자체 콘텐츠를 유튜브에서 다 찾아봐요. 아이돌 그룹이더라도 팀마다 다 색깔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가수에게 어울릴 수 있는 가사를 쓰려고 하죠."
외부에서 볼 때 작사가란 직업이 여유롭게 보일 수 있지만, 거절은 일상이며 가사마다 새로운 이야기와 표현을 상상해나가야 한다. 노래 한 곡을 완성하면, 이전의 경력은 잊고 다시 출발점 위에 서야 한다.
"아직도 제가 가사를 쓴다는 게 신기하고 좋아요. 물론 가끔 '이걸 왜 사서 고생할까'하면서 너무 힘들기도 할 때도 있고요. 처음에는 가사를 보내고 나면 휴대전화를 쥐고 살았어요. 연락 올까 봐요. 그렇게 1~2년은 휘둘리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면역이 생겨서 괜찮아졌어요. 지금까지 400곡 넘게 썼지만 발표된 곡은 20곡 정도예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힘든 시장이에요. 그런데 저는 고통받는 게 즐겁기도 한 것 같아요.(웃음) 제 이름 앞에 작사가란 타이틀이 생기고, 내가 먼저 대시를 하지 않아도 저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기뻐요."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작업실 노트북 앞에 앉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창한 이유는 없고 그냥 데모곡을 들으면 이 곡에 내 가사를 입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항상 누군가의 팬이었거든요. 케이팝을 정말 좋아해요. 관심이 있는 한 이 분야에서 떠나고 싶지 않아요."
2019년에는 혜수란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작사뿐 아니라 작곡도 도맡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그에게 이 앨범은 누군가를 향한 진솔하고 담담한 고백인 셈이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장래희망과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달랐어요. 장래희망을 써내야 할 때 항상 '교사'라고 써냈지만 사실 음악이 하고 싶었어요. 작사를 하며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제 음악을 만드는 것도 제 안에 막연하게 버킷리스트로 자리 잡고 있었죠. 그래서 해보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하고 싶은 말이 또 생기면 또 도전해 보려고요."
김혜정의 작사가로서 목표를 묻자 가온 차트 뮤직 어워드 작사가 상을 받는 것이다. 홀로 작업을 하는 직업인 탓에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흔들릴 때가 많다고. 이 상을 받는다면 스스로를 칭찬해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하니까요. 하하. 다른 사람들은 노래가 나올 때마다 대단하다고 하지만 저는 늘 다음 곡이 있어야 하고 시험을 치르는 입장이다 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해요. 스스로 자신이 없을 때도 있지만 이 상을 받는다면 제가 스스로를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상이 제 성과의 하나의 잣대가 될 것 같고요."
김혜정은 지금처럼 작사와 본업을 병행하며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에 '긴긴밤'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은 수많은 '우리'를 잃어버리며 '바다'로 나아가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사를 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어요. 한때 우리였지만 이젠 각자의 길로 떠나버린 사람들이요. 떠올리면 가끔은 슬프기도 가끔은 애틋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바다를 향해 가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