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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크레딧(67)] 김혜정 작사가 "그럼에도 나는 나의 바다를 향해"


입력 2022.02.27 12:27 수정 2022.02.27 12:50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2017년 소녀시대 '홀리데이'로 데뷔

플레이리스트에서 음악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기쁨을 선사한다. 이 같은 노래 한 곡이 발표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들의 노력이 동반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 외 프로듀서, A&R, 엔지니어, 앨범 아트 디자이너 등 작업실, 녹음실, 현장의 한 켠에서 노래가 나올 수 있도록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봤다.<편집자 주>


김혜정 작사가는 2017년 소녀시대의 '홀리데이'로 데뷔한 후 B.A.P, 엑소 '파워', NCT127 '백야', 이달의 소녀 '목소리' 등 아이돌 그룹들의 노랫말을 만들었다. 작사 일 외에도 물리치료사, 작사 강의 등을 병행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김혜정을 만난 곳은 강남인디레코드 작사 워크샵이 진행되는 서초동의 한 연습실이다. 김혜정은 수강생들이 개사한 가사를 꼼꼼하게 피드백 해주며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었다.


"작사라고 하면 여유롭게 글을 쓰는 줄 알겠지만, 소수의 작사가를 제외하고는 본업이 있어요.(웃음) 저는 물리치료사, 플라잉랩 작사 수업, 강남인디워크샵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어요. 강의는 2018년부터 했고,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작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에서 에너지를 얻어요. 반응을 해주는 것도 좋고요. 제가 지식이나 기술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도 있지만 저도 학생들에게 얻는 것이 있어요. 학생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집에 가서 저도 또 열심히 작사를 하게 되고요."


처음부터 '작사가가 돼야겠다'란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노래방 가는 걸 좋아했던 그는 2013년 작사 학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를 느껴 배운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작사 학원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작사 학원이 제 눈에 더 띄었죠. 그때 선생님이 양재선 작사가님이었는데 칭찬도 많이 듣고 작사에 푹 빠질 수 있도록 잘 가르쳐주셨어요. 그래서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혜정은 작사를 할 때 우선 과제는 가수에게 어울릴 만한 주제와 키워드를 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2013년부터 변한 적이 없다.


"가수에게 어울려야 제 안에서 가사가 잘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의뢰가 들어오면 가수의 전 앨범을 다 들어보고 예능이나 자체 콘텐츠를 유튜브에서 다 찾아봐요. 아이돌 그룹이더라도 팀마다 다 색깔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가수에게 어울릴 수 있는 가사를 쓰려고 하죠."


외부에서 볼 때 작사가란 직업이 여유롭게 보일 수 있지만, 거절은 일상이며 가사마다 새로운 이야기와 표현을 상상해나가야 한다. 노래 한 곡을 완성하면, 이전의 경력은 잊고 다시 출발점 위에 서야 한다.


"아직도 제가 가사를 쓴다는 게 신기하고 좋아요. 물론 가끔 '이걸 왜 사서 고생할까'하면서 너무 힘들기도 할 때도 있고요. 처음에는 가사를 보내고 나면 휴대전화를 쥐고 살았어요. 연락 올까 봐요. 그렇게 1~2년은 휘둘리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면역이 생겨서 괜찮아졌어요. 지금까지 400곡 넘게 썼지만 발표된 곡은 20곡 정도예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힘든 시장이에요. 그런데 저는 고통받는 게 즐겁기도 한 것 같아요.(웃음) 제 이름 앞에 작사가란 타이틀이 생기고, 내가 먼저 대시를 하지 않아도 저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기뻐요."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작업실 노트북 앞에 앉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창한 이유는 없고 그냥 데모곡을 들으면 이 곡에 내 가사를 입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항상 누군가의 팬이었거든요. 케이팝을 정말 좋아해요. 관심이 있는 한 이 분야에서 떠나고 싶지 않아요."


2019년에는 혜수란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작사뿐 아니라 작곡도 도맡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그에게 이 앨범은 누군가를 향한 진솔하고 담담한 고백인 셈이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장래희망과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달랐어요. 장래희망을 써내야 할 때 항상 '교사'라고 써냈지만 사실 음악이 하고 싶었어요. 작사를 하며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제 음악을 만드는 것도 제 안에 막연하게 버킷리스트로 자리 잡고 있었죠. 그래서 해보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하고 싶은 말이 또 생기면 또 도전해 보려고요."


김혜정의 작사가로서 목표를 묻자 가온 차트 뮤직 어워드 작사가 상을 받는 것이다. 홀로 작업을 하는 직업인 탓에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흔들릴 때가 많다고. 이 상을 받는다면 스스로를 칭찬해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하니까요. 하하. 다른 사람들은 노래가 나올 때마다 대단하다고 하지만 저는 늘 다음 곡이 있어야 하고 시험을 치르는 입장이다 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해요. 스스로 자신이 없을 때도 있지만 이 상을 받는다면 제가 스스로를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상이 제 성과의 하나의 잣대가 될 것 같고요."


김혜정은 지금처럼 작사와 본업을 병행하며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에 '긴긴밤'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은 수많은 '우리'를 잃어버리며 '바다'로 나아가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사를 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어요. 한때 우리였지만 이젠 각자의 길로 떠나버린 사람들이요. 떠올리면 가끔은 슬프기도 가끔은 애틋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의 바다를 향해 가야 하니까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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