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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진 실패’ 오만했던 축구협회에 들어온 빨간불 [기자수첩-스포츠]


입력 2024.09.07 07:01 수정 2024.09.07 09:00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생각보다 (티켓 예매)어렵지 않았다”

“(선임 논란 후)응원하는 게 맞나 싶지만 선수들 보고 싶어서 왔다”

“하루 즐기는 것은 좋지만, 한국축구 미래 위해 뭔가 보여주긴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5일 ‘2026 FIFA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팔레스타인전 킥오프를 앞두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축구팬들의 반응이다.


감독 선임 절차가 공정성 논란을 일으켜 도마에 오른 상황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나 홍명보 감독을 향한 비판 여론은 여전했다. 이런 기류는 경기장 내에서도 흘렀다. 손흥민·이강인 등 국가대표팀 선수들 이름이 불릴 때는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홍명보 감독이 소개될 때는 거센 야유가 쏟아졌다.


그 여파는 티켓 판매 속도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이날 역시 정상급 기량을 갖춘 스타들을 보기 위해 많은 관중이 입장했지만, 태국전(3월)-중국전(6월)과 비교하면 열기는 떨어졌다. 판매 개시와 함께 매진을 눈앞에 뒀던 것과 달리 팔레스타인전은 경기 전날까지도 5500여석이 팔리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전은 최종 관중 5만9579명(미판매분 4598석)을 기록, 최근 A매치에서는 이례적으로 6만 명을 넘지 못했다. 유럽파들의 총출동,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 새 감독의 첫 경기라는 점을 떠올릴 때 이례적인 결과다. 국내 A매치 홈경기 입장권이 매진되지 않은 것은 지난해 10월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튀니지전(평가전) 이후 약 11개월 만이다.


상징적 의미를 빼고 수치만 놓고 보면 놀라울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하지만 경기장 내 분위기를 보면 한국 축구대표팀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남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때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았다.


애국가 제창 뒤 대형 태극기를 내린 응원단은 '피노키홍' 'K리그 없이 한국 축구 없다' '협회는 삼류!!' 등이 적힌 걸개를 내걸었다. 관중들은 킥오프 직전까지 "정몽규 나가"를 외쳤다. 킥오프 후에도 같은 구호가 계속 들렸다. 답답한 경기 내용과 결과에 크게 실망한 팬들은 경기 후 또 "정몽규 나가"를 외쳤다. 현장을 찾은 정몽규 회장도 이를 지켜봤다. 감독을 향한 야유와 조소는 경기 후에 더 커졌다.


협회는 이번 매진 실패와 경기장 분위기를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분위기는 선수들 경기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그런 가운데 뒷수습에 나선 것도 선수들이다.


경기 후 손흥민은 “팬들 입장을 내가 대변할 수 없다. (감독 선임은)결정된 일이기에 (이제는)팬들의 진심 어린 응원과 성원이 선수들에게 필요하다. 주장으로서 염치없지만 받아들여주시고 앞으로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선보인 이강인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많이 안타깝고, 많이 아쉽다. 감독님이 저희와 함께하게 됐고, 오늘이 첫 경기였는데, 응원이 아닌 야유로 시작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팬들에게 야유가 아닌 성원을 부탁했다. 김민재는 경기 후 관중석 앞으로 찾아와 자제를 요청했다.


홍명보 감독은 경기 전날 기자회견에서 “손흥민이 주장으로서 불필요한 책임감이나 부담까지 가져서는 안 된다. 내가 나눠 갖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감독의 존재가 손흥민을 비롯한 선수들에게 부담이 되어버린 꼴이 됐다.


선임 과정에 대한 공정성 논란, 기습적인 티켓 가격 인상 등 팬들을 의식하지 않는 듯한 오만한 행보는 이제 멈춰야 한다. 이번에 팬들이 보내는 경고음을 빨간불로 받아들이고 더 낮은 자세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혹시라도 ‘어차피 관중들 꽉 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꽉 찬 관중이 한목소리로 규탄하면 더 괴로운 날이 도래할 수 있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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