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역사 가판대에 무슨일이...경향신문만 덩그러니 놓여
신문유통 총판업체와 신규진입 업체간 갈등으로 공급 차질
'그들만의 리그' 지키기에 중소기업 도산위기…유통구조 개선 시급 지적
최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전국 철도역사 신문가판대에 주요 일간지들이 사라지고 경향신문만 판매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5일 코레일유통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수도권지하철 대화역 스토리웨이 가판대를 비롯해 코레일유통이 관리 운영하는 전국의 스토리웨이 편의점들에서 경향신문과 스포츠경향만 진열 판매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한 스토리웨이 점주는 "이전에는 주요 일간지 및 주간지, 월간지 등이 꼬박꼬박 들어왔는데 신문 공급업체가 바뀌면서 지난 3일 경향신문만 공급돼 소비자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코레일유통 관계자는 "스토리웨이에서 판매되는 신문은 해당 언론사가 직접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외주업체와 공급 계약을 통해 이뤄진다”며 “최근 공급 계약을 체결한 신규업체와 기존 신문 총판매권을 가진 업체(총판)간 갈등이 빚어지면서 공급에 차질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당사와 계약을 체결한 A업체가 신문 가판 총판업체와 공급계약을 위해 협상을 진행했으나 총판쪽에서 공급가를 기존보다 2~3배 이상 높게 요구했고 아직까지도 합의점을 찾지 못해 신문 배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코레일유통은 지난달 말 기존 신문 유통업체와 계약기간 만료를 앞두고 공개 입찰을 통해 ‘신문 및 잡지사 공급 파트너사’를 새롭게 선정했다. 입찰은 전국 스토리웨이 편의점 321개소에 총 326만8840부를 납품하는 내용으로 적격심사대상, 최저가낙찰제 등에 따라 업체를 선정하게 된다.
당시 A업체는 코레일유통이 제시한 예상낙찰가(27억6030만6876원)보다 적은 투찰률 96.037%로 입찰, 약 26억2800여만원으로 사업권을 따냈다. 이후 지난달 14일 양사는 올 11월 1일부터 2017년 10월 31일까지 2년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코레일유통 관계자는 “1차로 조달청을 통해 입찰에 부쳤지만 무응찰로 유찰되자 2차로 전자수의시담 입찰을 통해 시장 가격을 재조사, 이후 3번째 공개 입찰을 붙여 최저가를 써낸 이 업체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코레일유통이 그동안 진행한 ‘신문 및 잡지사 공급 파트너사’ 입찰에서 지난 2010년, 2013년 모두 예가 초과로 2~3회 유찰이 발생했고, 이후 예산이 증액되자 3~4차에서 낙찰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번 입찰에서 신생 업체가 예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자 기존 신문 유통 시장을 장악해온 기득권층이 신생업체 밀어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신문 유통은 크게 가정에 배달되는 배급소용과 가판 등에 판매되는 일반 판매용으로 나뉘는데, 이중 일반 판매용은 본사와 공급계약을 체결한 총판업체를 통해 유통되는 구조다. 총판업체는 적게는 하나에서 많게는 10여개 신문사와 총판 계약을 체결하고, 본사에서 받은 신문을 다시 중간판매업체에게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유통 구조로 주요 일간지의 총판권을 가진 업체는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질 수 있고, 총판매업체들끼리 카르텔을 형성해 신생 업체의 진입을 막는 불공정 시장이 만들어질 우려도 있다. 이번 코레일 스토리웨이 편의점에 경향신문만 보급된 것도 이 같은 원인에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A업체 대표는 “공정한 입찰경쟁을 통해 신문공급 시장에 진입했지만 신문 총판업체들이 기존 시장 거래가보다 높은 신문 단가 및 보증금을 요구했고, 여기에다 공급요청 수량보다 더 많은 수량을 납품받기를 요구했다”면서 “사실상 시장진입을 막고 신규업체는 아예 발을 디딜수 없도록 하기 위한 행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특히 주요 일간지 총판권을 확보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 H산업이 여타 총판업체들을 배후 조정해 단 한군데와도 공급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면서 “이는 불공정 시장을 형성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속셈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 총판업체 관계자는 “신문은 소비자 판매가가 정해져있는 만큼 중간 도매가는 시장 여건에 맞게 재량껏 결정하는 부분인데 A업체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협의에도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소규모 총판업체들의 경우 A업체와 기존의 공급가격과 수량을 보장한다면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H산업의 영향력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A업체는 코레일유통에 신문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어 손해배상을 해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계약을 해지할 경우 위약금 10%에 손해배상까지 수억원을 날리게 된다.
이처럼 A업체는 가판 총판업체들에게 신문을 구할 수 없게 되자 다른 경로를 통해 매입한 신문을 코레일유통에 공급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총판업체들이 '불법유통'이라고 주장하며 물리력을 행사해 무산됐다.
경향신문의 경우 우여곡절끝에 직매입 계약을 별도로 체결, 공급을 받고 있으나 다른 주요 신문 및 주간지, 월간지 등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A업체의 직매입 제의마저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판업체 대표 및 관계자들은 지난 2일과 3일 새벽 신문 분류 작업을 하고 있는 A업체 작업장을 기습해 신문 구입처를 알려달라며 항의하고 신문 유통을 하지 못하도록 배급 차량을 가로막는 등 물리력을 행사해 경찰이 출동하는 등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 때문에 A업체는 4, 5일에는 007작전을 수행하듯 배송차량의 목적지를 바꿔가며 이들의 미행을 따돌린 끝에 간신히 일부 신문을 공급했다.
A업체 대표는 "총판업체들과 협상을 진행했으나 무리한 가격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며 "H산업측은 위약관계는 알아서 하고 이시장을 떠나든지 아니면 공급업무를 대신 해주는 대신 매월 2000만~3000만원씩을 대가로 지급하라는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등 사실상 담합을 통해 신문 공급 자체를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신문업계 관계자는 "신문 가판시장의 기형적 유통구조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며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라도 정부가 나서서 신문유통시장을 조속히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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