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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곧 드라마"…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공간'이 주는 힘


입력 2020.12.18 07:44 수정 2020.12.18 07:46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한정된 공간 활용한 영화들, 몰입감 높이는 세트, 소품 적극 활용


작품에서 공간이 주는 힘은 매우 크다. 공간이 인물들의 감정을 대변하기도 하고, 사람이 할 수 없는 분위기를 공간이 대신 조성해주기도 한다. 특히 한정된 장소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는 공간이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게 여겨진다.


영화 속 공간 활용은 특히 스릴러물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며 스릴감을 한층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개봉한 '폰 부스'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스투 세퍼트(콜린 파렐 분) 공중전화 박스에서 통화를 마치자, 다시 울리는 벨소리에 수화기를 든 순간부터 시작된다. 정체불명의 남자로부터 전화를 끊으면 쏴 죽이겠다고 협박을 당하고 러닝타임 81분 내내 스투 세퍼트는 공중전화 박스를 떠나지 못한다. 스투 세퍼트는 살인자로 몰리고,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감시당하며 수화기 너머의 사람을 추적해나간다. 한정된 공간이지만 폐쇄되있지 않은 공중전화 박스란 공간은 언제 어디서 공격을 당할 지 모르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해줬다는 평을 받았다.


2007년 작품 '페르마의 밀실'은 수학천재 네 명이 문제를 1분 내 풀지 못하면 사방이 오그라드는 밀실 안에 갇힌 내용의 영화다. 문제를 풀지 못할 때마다 점점 좁아지는 방 안의 모습이 죽음의 위기를 느낀 주인공들의 압박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방 안에는 책장과 피아노, 칠판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은 방이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해 나무로 된 책장을 눕히고 피아노로 막아나선다. 하지만 압축에 의해 종이처럼 파괴되고 구겨지는 책장과 피아노는 절망스러운 상황을 더욱 배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2013년 국내 작품 '더 테러 라이브'도 뉴스 방송국 스튜디오 안에서 앵커와 테러범의 대치를 긴박하게 이끌어나갔다. 윤영화(하정우 분)는 테러범과 통화를 하면서 그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아내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스튜디오는 물론 방송국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테러 현장보다는 윤영화와 테러범의 통화에 집중해 긴장감을 높였다.


18일 공개하는 이응복 감독의 넷플릭스 '스위트 홈'도 그린홈이라는 아파트 안에 갇힌 주민들과 괴물의 대립을 그린다. 이응복 감독은 낡은 아파트 그린홈 안에서 약육강식으로 얼룩진 또 하나의 작은 사회를 담으려 노력했다. 각기 다른 집 인테리어, 조명 등이 주인공들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게 꾸몄다.


장르물 안에서만 일정한 공간을 활용하는건 아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더 테이블'은 하루 동안 한 카페 같은 자리에 머물다 간 4쌍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주고 받는 형식은 배우들의 표정과 대화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또 11시엔 에소프레소와 맥주, 오후 두시 반엔 커피와 초콜릿 무스케이크, 오후 5시에는 두 잔의 따뜻한 라떼, 오후 9시에는 식어버린 커피와 남겨진 홍차로 시간과 메뉴를 통해 4쌍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2011년 영화 '대학살의 신'은 자식들의 싸움 문제로 만난 두 쌍의 부부가 한 집 안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내용으로 채웠넣었다. 처음에는 각자 부부가 언쟁을 벌이지만 곧 자신만의 이해관계에 따라 '오늘의 아군이 내일이 적이 되는' 대립구도로 시시각각 바뀐다.


집이라는 익숙한 생활 공간은 부부들의 갈등이 터져나올 수 있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아끼는 책에 오바이트를 하고, 좋아하는 위스키에 열광하고, 비싼 튤립에 진절머리를 내는 등 언제 어디서 부부싸움이 시작될지 몰라 보는 재미를 줬다.


다수의 영화에서 미술과 세트를 담당했던 이지은 씨는 기본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촬영장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또한 드라마, 멜로와 장르물에서의 공간 활용은 많은 차이점이 있다며 "장르물이 아닐 경우에는 너무 특별하거나 튀는 인테리어는 현실성을 떨어뜨릴 수 있어 생활 감각이 유지될 수 있도록 신경 쓴다. 예를 들어 공간 안에 식물을 놓아야 할 때, 프리프로덕션 기간에 제작진이 직접 키우며 위화감을 없애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장르물 같은 경우는 묘한 분위기를 잘 살려야 하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한정돼 있다. 책이나 이미지, 영상을 통한 레퍼런스를 참고해 그 안에서 또 새로운 설정과 디테일로 승부를 본다. 관객들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상징성 있는 것들을 많이 찾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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