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고, 정보로서 가치없는 ‘위임통치’
김여정의 간접보고가 갖는 위험성
근본적인 통치방식의 변화인가, 확대해석일까
지난 20일 오후 핸드폰에 속보가 떴다. ‘김정은 권력이양, 김여정 북한 국정 전반 위임통치’라는 타이틀만 있는 속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유고 기사처럼 보일 정도의 파괴력 있는 문구였다. 이날 오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국회 정보위원회 첫 업무보고에서 나온 내용 일부를 통합당 하태경 의원이 언론에 공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근거없고, 정보로서 가치없는 ‘위임통치’
정보학에서는 정보(intelligence)와 첩보(information)를 구분한다. 첩보는 특정 목적을 위해 수집된 사실에 관한 지식이다. 이 첩보를 전후 맥락을 파악해서 이것이 갖는 의미를 해석하게 되는데, 이렇게 ‘평가되고 분석된 가공된 지식’이 정보다.
예를 들어, 북한군이 군량미를 시중에 풀기 시작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다고 가정하자. 북한의 식량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군량미를 방출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군량미가 확보되어 교체하는 과정에서 묵은 군량미를 방출한 것인지, 전후 맥락에 관한 평가와 분석이 있어야 이 지식은 정보로서 가치를 갖게 된다.
과연 최근 지도부가 바뀐 국정원이 공개한 북한 정보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본다.
첫째, 이번에 김여정에 의한 위임통치설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너무 가공을 많이 했다. 평가·분석한 지식이 아니라, 한껏 멋 부린 용어일 뿐이다. 국제정치에서 위임통치(mandate)는 신생독립국의 자치능력이 부족할 경우 선진국이 대신 통치해 주는 경우를 말한다. 이 용어를 적용한다면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능력이 부족해진 특수한 상황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에게 특정 분야에 대해 통치권한을 맡기고 운영하도록 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국정원의 부연 설명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절대 권력은 그대로 있고, 권한을 여동생에게 조금 이양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북한 정보 브리핑에서 핵심 단어였던 ‘위임통치’는 언어의 유희일 뿐, 북한의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정책결정에 활용하기 위한 정보로서는 가치없는 용어였다.
김여정의 간접보고가 갖는 위험성
둘째, 김여정의 역할에 관한 부분이다. 국정원은 김여정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아니나 확실한 2인자라고 설명한다. 2인자로 볼 수 있는 근거는 그녀가 중간에서 보고를 받아,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하고, 다시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를 각 기관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만기친람(萬機親覽)으로 인한 김정은 위원장의 스트레스를 줄이겠다는 의도라는 데, 부담은 줄지만 전달 과정에서 왜곡은 피할 수 없다. 사람마다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지시한 정책이 북한 주민들 삶 속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수 없는 독재사회에서 왜곡 현상을 막을 방법은 마땅치 않을 것이다. 2009년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은 3년 동안 아버지에게 올라가는 보고를 미리 검토하고 지시하며 2인자로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2인자 김여정의 역할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향후 북한 정세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근본적인 통치방식의 변화인가, 확대해석일까
셋째, 통치방식의 변화에 관한 문제이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은 김여정과 일부 참모들에게 정책결정 권한을 넓게 보장하는 위임통치 방식으로 북한 체제를 운영하는 것으로 국정원은 파악하고 있다. 일주일 전인 13일 노동당 정치국회의에서 상무위원과 내각총리로 임명된 리병철과 김덕훈 그리고 신설된 군정지도부의 최부일 부장의 권한이 커졌다고 볼 만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내밀한 정책결정과정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면 모를까 쉽게 판단하기가 어려운 이야기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음지에서 일하는 국정원을 국민의 위임된 권력으로 통제하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정보위가 국정원 대북정보 브리핑의 대리발표 통로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국정원으로서는 공개될 위험 때문에 민감한 정보를 보고하기 힘들 것이고, 또 보고하더라도 예상되는 언론 반응을 예상하며 수위를 조절할 것이다. 북한 정보는 정부의 독점적 영역인데, 국회 정보위에서 조차 이렇게 차 떼고 포 뗀 정보만을 야당이 접한다는 것은 잠재적 집권세력으로서 손해다.
글/이인배 협력안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