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11월 대선 결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2016년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힐빌리에게서 인기가 높았다. 힐빌리란 미국 남부에 사는 교육수준이 낮고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가난한 백인을 일컫는 용어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으로 거론된다. 당시 힐빌리 가정의 고단한 삶을 담은 J. D. 밴스의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맞물리며 출간되면서 미국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주류층이 외면하는 낙후된 공업지역에 거주하는 빈곤한 백인 소외계층, 그로 인한 사회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미국 지식인 사회를 들썩이게 했기 때문이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동명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다. 연출은 천재 수학자 존 내시를 다룬 ‘뷰티플 마인드’의 론 하워드 감독이 맡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가족에 초점을 맞춰서 불우한 주인공의 성공담을 그렸다. 영화는 인턴쉽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예일대 법대생 밴스(가브리엘 바쏘 분)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된다. 미래가 달린 대형 법률사무소의 인턴 면접을 앞두고 있는데 헤로인 중독으로 쓰러진 엄마(에이미 아담스 분)를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밴스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린다. 그러나 힘겨운 삶을 살아왔던 가족들과 만나며 다시금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영화는 풍요로운 미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준다. 촌뜨기의 슬픈 노래라는 뜻의 ‘힐빌리의 노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난한 달동네에서 자란 치열하고 슬픈 투쟁의 서사다. 힐빌리에게 가난은 대대로 이어지는 가풍이나 다름없다. 한때 융성했던 제조업 중심도시들이 무너지면서 힐빌리 사람들은 대부분 노동을 하지 않고 기회가 주어져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어른들은 물론 심지어 청소년들까지 마약에 쉽게 노출되어 자신을 망가뜨린다. 가난과 계급이 대물림 되면서 저소득 백인들은 미래를 더욱 비관하며 포퓰리즘에 쉽게 빠져든다.
멘토와 같은 사회적 자본이 미국 서민사회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인간은 존경하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을 닮으려 노력하는데 멘토가 되는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을 경우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확률도 그만큼 커진다. 영화에서 가정 폭력과 약물 중독으로 부모역할을 할 수 없던 편모를 대신해 할머니는 밴스를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살폈다. 해병대에서 익힌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나쁜 습관도 고칠 수 있었다. 주인공은 멘토들의 조언과 같은 주변의 사회적 자본을 통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가족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사랑만큼이나 고통을 주는 것도 가족이다. 주인공에게 고통을 끝까지 주는 사람도 가족이며 그 고통으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사람도 역시 가족이다. 영화는 그런 가족에 끈끈한 연대에 포커스를 맞춰 관객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준다. 외할머니, 누나 린지, 여자친구 우샤까지 주인공의 삶에 버팀목이 되어준 강인한 여성들의 역할도 의미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계층 간의 단절이라고 한다. 계층 간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양극화된 세상은 고립되고 소외된 계층을 현혹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이 자라나는 토양이 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힐빌리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는 공교롭게도 트럼프가 떠나는 시기에 개봉됐다.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주택가격이 오르면서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지금,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우리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