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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나무는 뿌리 내리고 [조남대의 은퇴일기(56)]


입력 2024.07.16 14:06 수정 2024.07.16 14:06        데스크 (desk@dailian.co.kr)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서가 메마른 사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따가운 햇살 아래 오아시스처럼 선한 사람들이 존재하니 살맛나게 하는 것이 아닐는지. 소중한 물건이나 현금을 잃어버렸다가 친절한 이의 손길로 되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치 내 일인 듯 가슴이 훈훈해지고 미소가 번진다. 한때는 소매치기 같은 사건이 다반사였던 시절도 있었다. 삶이 나아지고 사회안전망 시스템이 갖추어지자 그러한 단어들은 사전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희미한 기억이 되었다.


양평 다녀오는 길에 기름게이지가 빨간선을 넘어 주유소에 들렀다. 기름값이 치솟자 조금이라도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나서는 모습은 마치 봄비를 뚫고 꽃가루를 찾아 헤매는 나비와도 같다. 서울 시내보다 저렴한 데다 셀프주유소라 더 착한가격에 가득 채우고 나니 마음이 뿌듯해 신나게 달렸다. 이틀 지난 저녁 무렵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열어보니 주로 사용하던 빨간색 신용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카드로 계산하고 당황스러움에 급히 집에 와서 입고 다니던 옷 주머니를 비롯하여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헛수고였다. 카드 분실신고를 해야 하나 망설이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며칠 전 기름을 넣은 후 카드를 빼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양평 오가는 길에 있는 주유소에서 주유하고 있는 모습


인터넷 지도를 뒤져 부근 주유소에 전화했다. “우리 주유소는 기름을 직접 넣어주는 곳이라 손님이 카드를 두고 갈 일이 없다”며 근처 셀프주유소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이웃의 주요소면 경쟁 관계일 수도 있을 텐데 친절하게 안내해 주다니. 푸근한 시골 인심을 느낀다.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자 은행명과 카드 색을 물어보더니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고 한다. 혹시나 카드를 불법 사용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이미 저녁이라 그러지 못하고 며칠 후 들렸다. 한 뭉치 카드 중에 붉은색의 내 카드가 눈에 띄자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주인은 손님들이 카드를 두고 가더라도 시골이라 거리가 있는 데다, 카드를 여러 장 가지고 있어 찾으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카드 불법 사용 우려가 사라질 정도로 신뢰가 쌓인 것 같아 뿌듯했다.

손님들이 찾아가지 않아 주유소에서 보관하고 있는 신용카드

한때 소매치기가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복잡한 버스나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나 오토바이 타고 순식간에 가방을 낚아채 가는 날치기 등은 전설이 된 지 오래다. 요즈음에는 글을 쓰기 위해 카페나 아파트 내부의 작은 도서관을 자주 찾는다. 노트북이나 물건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문 앞에 놓인 택배도 며칠 여행을 다녀와도 그대로 놓여 있다.



카페에서 노트북과 가방을 두고 자리를 비운 모습



배달된 물품이 대문 앞에 놓여진 모습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로스트(LOST)112는 전국 다양한 기관에서 습득한 물품을 조회할 수 있다. 이 사이트를 통해 하루 만에 물건을 찾았다는 후기도 보인다. 외국에는 유실물센터가 없는 곳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유실물을 습득하더라도 신고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에 떨어진 지폐를 주워 주인을 찾아줬다는 뉴스를 보았다. 주인은 주머니에 넣은 돈이 떨어진 것도 몰랐지만 지나가던 여고생이 쪼그려 앉아 길거리에 흩어져 차량에 밟히는 지폐를 주워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즉시 인근 CCTV 영상을 확인한 후 주인을 찾아 주었다. 뉴스를 보고 그 학생이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들딸은 저런 상황과 맞닥쳤을 때 어떻게 처리했을까 생각해 본다. 며칠 전 지하철 구내의 무인점포에서 떡을 한 팩 샀다. 진열장에서 물품을 꺼내어 가격표를 찍어 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나쁜 마음 먹으면 물건을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 국민의 의식 수준이 이렇게 높아지다니.


외국 여행하다 보면 가이드가 가방을 조심하라는 당부를 빠뜨리지 않는다. ‘작은 가방을 뒤로 메고 다니면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한다. 특히 한국 여권은 세계 어디에서나 환영받는 보물 같은 존재이기에 가장 깊숙한 곳에 소중히 보관하라고 한다. 외국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갈 때도 핸드백을 뒷좌석에 두면 정지 신호에 멈춘 순간 망치로 유리창을 깨고 순식간에 훔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한적한 거리에 외국 여성 혼자 있는 경우 남자 한 명이 지나가며 슬쩍 밀치면서 시선을 가린 후 다른 한 명이 여행용 가방을 잽싸게 낚아채 가기도 한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었다.



명동거리에서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니는 외국 관광객들


우리나라의 명동이나 복잡한 거리를 오가는 관광객들 역시 작은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닌다. 소매치기를 의식해서 그런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든다. 가이드들이 여행객들의 안전을 위해 그렇게 안내하였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여행자들의 가방을 낚아채거나 뒤져 돈을 훔쳐 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한국에는 소매치기 걱정 없으니 가방을 뒤로 메고도 마음 편히 다니세요”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여행을 다녀 본 외국인이라면 우리나라처럼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늦은 밤거리를 여성이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까. 세상 어디에도 이처럼 안전한 곳은 흔치 않다는 것을 실감하리라.


우리나라는 CCTV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등 범죄가 발붙일 곳이 없을 정도로 사회안전망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도 가방을 앞으로 메지 않아도 되고, 떠난 자리에 남겨진 물건이 그대로 있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손가방을 뒤로 메고도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기를 소망해본다. 신뢰의 나무가 뿌리 내리고 있는 동방의 신망 가득한 나라의 문화는 세계 어디에도 자랑할 수 있는 큰 자부심이며 소중한 자산이 아니겠는가.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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