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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이름은? [정명섭의 실록읽기⑧]


입력 2025.04.15 13:51 수정 2025.04.15 13:52        데스크 (desk@dailian.co.kr)

'생쇼'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온갖 난장판이 펼쳐진 끝에 결국 한양이 도읍으로 정해졌다. 정확하게는 새로운 궁궐을 북악산 남쪽에 짓기로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이성계는 궁궐 공사가 한창인 서기 1394년 10월 25일에 개경을 떠나 한양에 도착한다. 한양부의 객사를 고쳐서 임시 궁궐인 이궁으로 삼고 공사를 독촉했다. 그해 12월에 드디어 공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도읍을 이루기 위해서는 궁궐 뿐만 아니라 성곽을 비롯해서 종묘 등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끝나지는 않았다. 다음 해인 1395년 10월에 경복궁의 1차 공사가 마무리되자 그달 7일에 이성계는 측근 중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새로 짓는 궁궐과 그 안에 세워지는 전각들의 이름을 정하라고 지시한다.


근정전 현판 (직접 촬영)

판삼사사 정도전(鄭道傳)에게 분부하여 새 궁궐의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짓게 하니, 정도전이 이름을 짓고 아울러 이름 지은 의의를 써서 올렸다.


유학자인 정도전은 새롭게 지은 궁궐과 전각의 이름을 성리학적인 기준에 맞춰서 정했다.


신이 분부를 받자와 삼가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시경(詩經)》 주아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토록 그대의 크나큰 복(景福)을 모시리라.’라는 시를 외우고,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고 이름짓기를 청합니다.

우리가 아는 경복궁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순간이다. 그는 이어서 이름을 정했고, 그렇게 지은 이유도 차례차례 고하였다. 침전을 강녕전(康寧殿)으로 정한 이유는 홍범 구주(洪範九疇)의 오복 중에 세 번째가 강녕이기 때문이다 홍범구주는 중국의 전설적인 태평성대인 요순시대의 정치 이념을 하나라 우왕이 정리한 것이다. 구주에 속한 9개의 원칙 중에 마지막이 오복과 육극이었는데 오복 중에 세 번째인 강녕은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함을 말한다. 따라서 이성계가 잠을 자는 침전의 이름에 건강하고 편안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남긴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름을 정한 것은 침전의 동쪽과 서쪽에 있는 보조 침전들이었는데 정도전은 동쪽 침전을 연생전, 그리고 서쪽 침전을 경성전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늘과 땅은 만물을 봄에 낳게 하여 가을에 결실하게 합니다. 성인이 만백성에게 인으로써 살리고 의로써 만드시니, 성인은 하늘을 대신해서 만물을 다스리므로 그 정령(政令)을 시행하는 것이 한결같이 천지의 운행을 근본하므로, 동쪽의 소침을 연생전(延生殿)이라 하고 서쪽 소침을 경성전(慶成殿)이라 하여, 전하께서 천지의 생성하는 것을 본받아서 그 정령을 밝히게 한 것입니다.


정도전이 임금이 천지만물의 탄생과 결실이라는 천지 운행의 흐름을 본받아서 후계자들을 잘 낳고 성장시키며, 좋은 정치를 하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다음으로 이름을 정한 것은 경복궁의 편전인 사정전(思政殿)이었다. 편전은 정전을 보조하는 공간이면서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공부를 하는 경연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정도전은 이 공간의 이름을 지을 때 공부와 생각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즉, 서경에 나오는 생각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는 구절을 들고 와서 임금이 이곳에서 매일 아침 정사를 돌볼 때 늘 깊은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 다음은 정전인 근정전과 그곳으로 들어가는 근정문 차례였다.


정도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하지 못하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언급한다. 작은 일도 그런데 나라를 다스리는 큰일 역시 그런 원칙이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서경’에 나오는 경계 하면 걱정이 없고 법도를 잃지 않는다는 구절을 언급한다. 그리고 편안히 노는 자가 나라를 가지지 못하게 하라. 조심하고 두려워하면 하루 이틀 사이에 일만 가지 기틀이 생긴다. 여러 관원들이 직책을 저버리지 말게 하라. 하늘의 일을 사람들이 대신한다는 구절까지 덧붙인다. 나라의 일을 논하고 정전과 정전으로 드나드는 문에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의미를 심은 것이다.


새로운 궁궐과 전각의 이름을 직접 짓지 않고 신하에게 맡긴 이성계와 그 뜻을 받들어서 성리학적인 소양을 담아서 이름을 정한 정도전의 콤비 플레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경복궁과 그 주변에서 벌어진 왕자의 난을 비롯한 온갖 사건 사고들은 이런 멋진 이름을 더럽혔다. 이름을 지은 정도전조차 몇 년 후에 경복궁 근처 송인 비명횡사를 했으니까 말이다.


정명섭 작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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